박지성(31) 입단 기자회견에서 만난 토니 페르난데스 퀸스파크레인저스(QPR) 구단주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QPR의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 악마를 본뜬 기자의 휴대폰 케이스를 보더니 "박지성은 이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레드 데블) 소속이 아니니 그것부터 바꾸라"고 했고 케이스를 벗겨내자 너털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그는 기분이 좋았다.
맨유는 박지성의 등을 떠밀지 않았다
공식 기자회견 후 한국 취재진과 별도로 만난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박지성을 영입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가 박지성을 내쳤다고 보고 있지만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맨유가 그를 놔주지 않으려고 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박지성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는 질문에 "첫째는 우리가 맨유와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구단이라는 점이다. 맨유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이지만 우리는 이제 겨우 강등을 면했다. 두 번째로 힘들었던 것은 맨유가 박지성을 보내려고 하지 않아서였다"고 말했다.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맨유가 효용 가치가 떨어진 박지성의 등을 떠밀었고 설 자리가 궁해진 박지성이 울며 겨자먹기로 새로운 팀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가설은 사실과 거리가 있는 듯 하다.
박지성, 마크 휴즈 만큼이나 필요했다
박지성의 이적은 팀 재건에 그가 반드시 필요했던 QPR의 진심이 통한 결과다.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진정성과 투명성을 앞세워 박지성 설득에 나섰다고 말했다.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사용한 셈이다. 그는 지난 1월 마크 휴즈 감독을 사령탑으로 초빙할 때도 같은 모습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휴즈 감독은 1980~90년대 맨유의 간판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고 블랙번 로버스, 맨체스터 시티 사령탑을 역임한 스타 출신이다. 지난해 휴즈 감독이 사령탑에 부임한 후 QPR은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리버풀(3-2), 아스널(2-1), 토트넘 홋스퍼(1-0) 같은 명문 클럽을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어렵사리 EPL 잔류에 성공했다.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휴즈 감독과 박지성을 QPR의 향후 두 시즌을 이끌어 갈 두 중심 축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 휴즈 감독은 지난 1월 QPR과 2년 6개월 계약을 맺었고 박지성의 계약 기간은 2년이다. 계약 만료 시점이 같은 두 사람은 '공동 운명체'가 된 셈이다.
한 발짝씩 명문으로 간다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말레이시아에 적을 둔 항공사 에어 아시아의 경영주다. 그는 "사업이건 축구건 도전은 늘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10년 전 항공기 2대에 불과했던 에어 아시아가 현재는 104대의 항공기를 보유할 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사실을 환기시켰다. 항공 사업에서 이뤄낸 '기적'을 축구판에서도 연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언제까지 무엇을 이뤄낸다고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발전을 원한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성장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QPR은 팀 발전을 위한 장단기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회장에 따르면 QPR은 유소년 시스템을 확 뜯어 고쳤다. 맨체스터시티 유소년 기술이사들을 스카우트, 유소년 아카데미를 재조직하고 있다. 또 훈련장 이전과 경기장 신축도 추진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올 여름 이적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계약을 몇 건 더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크레이그 벨라미(리버풀)의 영입 가능성을 묻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기성용(셀틱)의 영입설에 대해서도 "오늘은 지(박지성)를 위한 자리이고 기(기성용)가 대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좋은 선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볼 문제"라고 여운을 남겼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다음달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지난달 박지성 설득을 위해 방한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던 터라 어떤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지에 관심이 간다.
런던(영국)=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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