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신입니다/우리는 병신입니다/이 슬픈 몸을 움직여/이 절뚝거리고 비비적대는/우스운 몸뚱아리를 움직여/한판 춤을 추다가/서리 맞은 이 목숨이 허, 허, 웃을/진한 춤을 추다가 가야 합니다/어디까지 놀아야/어디까지 놀아야/ 우리는 가는 것인가'공옥진의 병신춤에 바친 김승희의 시 이다. 큰 얼굴, 작은 키, 굽은 등, 사팔뜨기 눈, 뒤틀린 손발. 무대에서 공옥진은 늘 병신이다. 그 앞에서는 우리도 모두 병신이다.
■ 그가 소리 지르며, 뒤뚱거리며 춤춘다. 그에게 춤이란 뭐냐 하면,'곱게 가다듬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오장육부가 움직여줘야/징그럽게 이뻐지는 것'이다. 그래서 김승희는 '당신의 오장육부가 건드리는 대로/춤을 추시오/팔자병신은 팔자병신대로/문둥병신은 문둥병신대로/육갑이 풀리는 대로 춤을 추시오'라고 했다.'뒤엉키는 살아 있음의/신명 나는 곡선대로' 추는 춤은'미친 살풀이판'이다. 죽은 자들만이 아니라 산 자들의 넋까지 위로하는.
■ 그의 춤을 처음 본 것은 30년 전 매화꽃 흩날리는 어느 봄날의 벌건 대낮 지붕도 없는 대학축제 무대에서였다. 무명 치마저고리 질끈 동여매고, 버선발에 부채 하나 손에 들고, 마이크 가슴에 묶고, 작고 못난 여자는 히히 웃다가 꺽꺽 울면서 걸진 대사와 욕, 사지가 오그라든 동물 춤을 섞어가며 해학을 풀어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조롱이고, 우리의 오장육부 깊이 감춰진 한(恨)을 녹이는 씻김이었다. 또한 켜켜이 쌓인 스스로의 한을 풀어내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 공옥진은 늘 혼자였다. 춤도, 삶도. 전통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온 '1인 창무극'에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예술계는 뿌리가 없다는 이유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거부했고, 그 때문에 대를 이을 사람도 없어졌다. 1998년 병으로 쓰러진 그를 세상은 잊고 살았다. 2010년 병든 몸으로 국립극장'한국의 명인 명무전'에 올라 마지막 병신춤을 추면서 공옥진은 울었다. 그가 어제 79세로 한 많은 이승의 무대를 떠났다. 이제는 어느 누가 그의 슬픔을 놀아 줄 것인가.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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