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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진짜 대통령감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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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진짜 대통령감은 누구인가

입력
2012.07.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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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킹스 스피치'는 영국 조지 6세(1895-1952)가 심한 말더듬을 극복하고 대독 선전포고를 국민에게 알리는 감동적 방송 연설을 하기에 이르는 휴먼 스토리를 그렸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 위기와 정체성 혼란에 처한 영국인의 자존감을 되살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지도자를 자임(自任)하지 않은 인물의 영웅적 면모에 대중은 진정한 감동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조지 6세는 일찍이 대중 연설에서 참담한 좌절을 겪은 상처 때문에 형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와의 결혼으로 물러난 왕좌 승계를 꺼린다. 떠밀리듯 왕위에 오른 뒤에도 국가 지도자 역할 수행을 늘 망설인다. 그런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전시(戰時) 대국민 연설에 성공한 바탕은 오로지 지도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는 의지다. 그는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 온갖 굴욕을 감수한다.

대선을 앞두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너도나도 나서는 이들 가운데는 스스로 진정성을 믿는지 의심스러운 이도 여럿이다. '최고의 지위를 스스로 원하는 것만으로 결격 사유'라는 격언이 단지 왕조 사회만의 것일까 싶다. 영국 하원은 의장에 선출된 이가 동료들에 이끌려 마지못한 듯 의장 자리에 앉는 전통을 지금껏 지킨다고 한다.

대권 의지를 솔직히 밝히지 않은 채 정치 외곽을 맴도는 인물이 지도자로 적합하다는 얘기로 자칫 오해할 수 있겠다. 대중이 단호한 권력 의지를 지닌 인물과 조지 6세 같은 '말더듬이 영웅'을 함께 선호하는 것은 인류의 진화 역사와 관련 있다고 한다. 동물행동학에 따르면 원숭이 등 유인원 사회의 권력구조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를테면 개코원숭이 사회는 강한 힘을 과시하는 놈이 지도자 지위를 차지한다. 반면 침팬지 사회는 현란한 놀이 행동을 연출하는 놈이 무리의 존경과 사랑을 누린다.

인간 사회는 두 가지가 혼재된 구조다. 올바른 지도자 찾기가 한갓 유인원 무리보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까닭이다. 그래서 정치 경제 도덕이 혼돈과 위기에 처한 때일수록 강한 개성과 연기력을 함께 지닌 데마고그, 선동 정치인이 인기를 끈다. 구약성서에서 대통령학에 이르도록 갖가지 교훈을 일깨우지만 올바른 지도자를 분별하기는 늘 어렵다.

역대 대통령이 잇따라 실패한 지도자로 끝나는 우리 사회만 그런 게 아니다. 앞선 민주주의를 뽐낸 서구 사회도 하나같이 리더십 결핍, 리더십 위기를 한탄한다.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종말론적 경고마저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올바른 지도자를 찾는 길은 없을까.

대중은 자신들의 어려움과 희망을 잘 헤아리는 지도자를 갈망한다. 그래서 대화와 소통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되뇐다. 그러나 모든 정치인이 그처럼 행세하는 마당에 진정성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오히려 대중의 환상과 편견에 영합하는 선동가를 선택하기 십상이다. 영국의 어느 유대교 랍비는 리더십 위기를 다룬 책에서 그 위험을 사막에서 물을 찾는 우매한 무리의 지도자 선택에 비유했다.

그에 따르면, 어리석은 무리는 자신들의 목마름 고통 불안 방황을 목청껏 대변하면서 신선한 물이 있는 곳을 자신 있게 가리키는 인물을 지도자로 고른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현실에 신속한 해법을 제시하는 리더일수록 이내 실망과 좌절을 안기기 마련이고 오아시스는 갈수록 멀어진다. 반면 현명한 무리는 지혜와 영감과 용기를 지닌 리더를 따른다. 물을 찾는 뚜렷한 비전과 너른 안목, 힘겨운 여정을 끝까지 이끌 의지와 인내를 입증한 지도자에게 운명을 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현인의 온축(蘊蓄)이 가르치는 올바른 지도자, 진짜 대통령감은 대중의 갈증에 영합하지 않고 현실을 정직하게 규정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미래를 향한 험한 길을 함께 헤쳐 나가는 용기와 인내를 국민에게 요구하고 솔선수범하는 정치인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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