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의 시를 중학교 교과서에서 추방시켜야 한다면 저의 작품들도 교과서에서 모조리 빼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문재인 대선 예비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정치행위를 했으므로 현재 초ㆍ중ㆍ고 교과서에 실려있거나 앞으로 실릴 예정인 저의 작품 모두를 추방해주기 바랍니다."
안도현 시인은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주호 장관께'란 제목으로 띄운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검정교과서 심사 과정에서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의 작품을 빼도록 출판사에 권고한 사실이 알려지자 문단 전체가 들고 일어 났다.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는 이날 성명에서 이 조치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회의는 "도 시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빼지 않는다면 검정 승인을 취소하겠다는 엄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현 정부 들어 문인의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됐다"며 "작가회의 회원들이 쇠고기 파동 때 촛불집회에 가담했다고 문화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는 문예진흥기금 신청 때 불법집회 안 나가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문인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우리나라는 작품의 문학성을 떠나 작가 정치성향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는 이상한 질서가 작동한다"며 "이번 작품은 본질적으로 서정시라 사상 논쟁을 비롯해 청소년 교육에 문제가 될 부분이 없다"고 평했다. 이씨는 2000년대 초반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아 벌인 교과서 수록 작품 삭제 운동의 표적이 된 적이 있었다.
한국문인협회 정종명 이사장도 "지난 10년간 교과서에 수록돼 사회적, 이념적으로 검증된 작품을 삭제 권고한다는 것은 황당한 조치"라며 "작품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유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단지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삭제하라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도 의원이 작가회의 소속이라 문인협회에서 당장 성명서를 내지는 않겠지만, 사태가 어떻게 정리될지에 따라서 향후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쓴 시를 이제와 문제 삼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보수, 진보 성향의 작가들이 한 목소리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의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편 평가원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 캠프의 정치발전위원을 맡고 있는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대표집필한 교과서에 대해 "수정 또는 집필진 교체 지시를 내릴 상황이 아니다"고 밝혀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유신정권 찬양 등을 담은 이른바 '뉴라이트' 교과서 운동을 이끌어온 박 교수는 지난 해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교학사)를 대표집필하면서 전체 교과서 집필 내용과 방향을 주도했다. 윤리와>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