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농사를 짓지 않는 65세 이상 농민을 원로조합원으로 인정하는 농협법 개정을 추진한다. 농협은 조합원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 농민들의 경작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을 감안했다고 하지만 농민단체인 농협의 정체성 훼손 우려와 도덕적 해이 논란 등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농협 관계자는 9일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농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원로조합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농협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원로조합원 제도는 ‘연령이 65세 이상이면서 농협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인 고령자의 경우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이다. 농협 측이 65세 이상 고령 조합원을 원로조합원으로 인정해 계속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려는 이유는 농촌인구 격감과 급속한 고령화로 현재 조합원 자격조건인 ‘1,000㎡ 이상 경작지에서 90일 이상 경작’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협은 매년 자격에 미달하는 조합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농협을 위해 한 평생 기여했는데 늙었다고 조합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느냐”는 고령 농민들의 반발로 애를 먹고 있다. 농협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원로조합원 제도를 도입해 농촌에서 고령 조합원을 대상으로 건강검진과 같은 의료ㆍ복지 지원 강화를 계획하고 있다. 5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 조합원은 119만4,000명으로 전체 조합원 246만의 절반에 육박하고 이중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인 농민은 95만명 가량된다.
게다가 향후 5년이 지나면 조합원 중 65세 이상이 6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 관계자는 “고령 조합원 대다수는 농협이 어려울 때 현물출자로 조합 설립을 주도했거나 수십 년간 성실하게 조합 활동에 참여해 농협 발전과 근대화에 기여해 온 분들로 국가도 정책적으로 노인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상황에서 농협도 고령 조합원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의 이 같은 방침은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이라는 농협 정체성에 적지 않은 훼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고령 조합원들이 출자에 따른 배당금을 받고 영농자금 저리 대출, 농협 장비 사용에 따른 인센티브 등 각종 혜택을 계속 받으면서 정작 농업활동은 하지 않게 되면, 농업 생산에 꼭 필요한 분야에 대한 지원은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농협이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운 정치권에게 농협의 정치적 영향력을 앞세워 무리한 법개정을 관철시키려 한다고 보고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부 교수는 “농촌 고령화를 감안할 때 고령 조합원 확대를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농업생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기려는 도덕적 해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의식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농협이 농촌의 고령농민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여전히 농사를 짓는 비조합원 고령 농민을 조합원으로 영입하는 노력을 해야지, 정체성 훼손을 무릅쓰고 기존 조합원을 원로조합원으로 확대하는 것은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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