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은 지난해 12월부터 조선왕조 궁중음식에 관한 고문헌 아카이브 작업을 해왔다. 여기 저기 흩어진 관련 기록을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상세 해제를 다는 일이다. 한식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중연 조선왕조 궁중음식 고문헌 연구단(연구책임자 주영하 교수)이 해온 이 작업에는 국어학 역사학 민속학 서지학 등 여러 분야 인문학자들이 참여했다. 그 성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이 '인문학자가 차린 조선 왕실의 식탁'이라는 이름으로 11일 한중연에서 열린다.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의 궁중음식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논문 12편을 발표한다. 왕과 왕비, 왕대비 등의 생신 잔치 기록인 진찬ㆍ진찬 의궤에 나오는 음식 이야기를 비롯해 왕실 잔칫상에 올라간 음식 종류를 빠짐없이 적은 '음식발기(飮食發記)', 왕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의 <승정원일기> 로 본 영조 임금의 일상 식사, 정조 임금의 화성 행차 기록인 한글본 <뎡니의궤(整理儀軌)> 에 수록된 정조의 수랏상 메뉴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뎡니의궤(整理儀軌)> 승정원일기>
특히 한중연의 장서각이 소장하고 있는 360여 건의 '음식발기'는 조선 궁중음식을 일별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초 자료인데도 그동안 상세한 해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음식발기'에는 음식 이름뿐 아니라 음식을 제공한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 그들에게 답례로 내린 음식상도 나온다.
민속학자로서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주영하 교수가 발표할 논문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 시절의 '음식발기'에 등장하는'요리소 화부인'이 누구인지 밝힌 것이다. 답은 '정동 화부인'으로 불렸던 프랑스계 여성 앙투아네트 손탁, 당시 외국인을 접대하는 황실 연회의 책임자이자 서울의 외교클럽 노릇을 했던 정동 손탁호텔의 주인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할 때 그의 도움이 컸는데, 그 사례로 고종이 하사한 땅에 지은 것이 손탁호텔이다. 1903년 고종의 52세 생신, 1906년 황태자 순종의 33세 생신 등 황실 잔치의 '음식발기'에는 '요리소 화부인가 보이'에게 '쟁반기와 면합을 내렸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주 교수는 여기서 '화부인가 보이'는 화부인 집의 보이라는 의미로 손탁의 양자이면서 손탁호텔 보이였던 장경춘이 아닐까 추정했다.
한중연의 조선 궁중음식 고문헌 아카이브는 진연ㆍ진찬 의궤와 '음식발기' 외에 70세 이상 원로 대신들을 위해 베풀던 기로연(耆老宴)음식, 왕실 제사의 젯상 차리기 예법에 관한 자료를 망라하고 있다. 이 문헌들에 대한 상세 해제는 거의 완성됐다.
역사 연구가 다 그렇듯이 궁중음식에 대한 연구도 정확한 문헌 고증과 해제는 필수다. 그게 먼저 이뤄져야 본격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해서, 틀린 번역과 오류가 수두룩한 자료를 인용하는 예가 흔하다고 주 교수는 지적했다. 영조의 탕평책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잘못 알려진 탕평채가 대표적이다. 주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어디에도 영조가 탕평채를 먹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지적하면서, "문헌에 대한 정확한 연구를 토대로 음식의 인문학적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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