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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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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71>

입력
2012.07.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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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이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만복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는데 서일수가 가만히 그의 소매를 잡으며 한마디했다.

그냥 놔두지.

에이 드런 놈들……

몇 번이나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뒤치락대던 만복이 잠시 후에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자 서일수는 그에게 다가앉아 목침을 머리 아래 괴어주고는 물러났다.

신통이 얼핏 눈을 뜨니 날이 샜는지 만복은 일어나 앉아서 밝아진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통이 일어나 앉자 옆에 누웠던 서일수도 슬그머니 일어났다. 만복이 고개를 돌리며 서일수에게 말했다.

내가 간밤에 주접을 떤 모양이군.

무슨 술을 그리 험하게 마셨나?

조정이 기둥뿌리까지 썩었으니 아예 허물어버리든가 할 작정이우.

김만복은 어제 있었던 일을 찬찬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하도감에 나갔더니 전라도 조운선이 들어와 미곡이 입고되었다면서 급료가 나온다구 하더라구. 잘 알다시피 오영(五營)이 폐지된 이후에 무위영 장어영은 지금까지 일 년 하고도 한 달이 넘도록 쌀 한 톨, 베 한 장 받지 못하였소. 새 병조판서가 들어선 이래 양반 자제나 친인척들로 별기군을 창설하여 신식 군대를 만든다며 우리는 의붓자식 취급을 했지. 일본에서 무라다 소총을 이만 정이나 구입하고 저들은 새 군복에 일본 교관이 사격과 제식 교련을 시키면서 우리에게는 급료도 안 주면서 성벽의 보수다 고관들의 행차 수행이다 성 안팎 초소의 야간 수직 같은 고된 임무만 주는 거요. 그에 비하면 별기군 놈들은 작년부터 저희끼리 몰려다니며 주막이나 시정에서 만나게 된다 치면 우리를 오합지졸이니, 대원의 대감의 발가락 때니, 드러내놓고 멸시하는 거요. 그래서 우리도 그놈들이 조선 군사가 아니라 왜별기(倭別技)라고 돌아서서 침 뱉는 시늉도 하다가 싸움박질이 벌어져 영창에 갇히기도 하는 형편이었지.

아무튼 그렇기로 지금은 모든 제도가 바뀌고 있는 중이니 우리 차례도 오고 대우도 나아지겠거니 하며 참고 있었소. 형님 아우님이 보았던 것처럼 우리가 오죽하면 시정에 나와 장사 농간도 부리고 과시에 나가 접꾼 일도 하며 왈짜배처럼 살아가겠수? 나야 시정에서 자라나 눈치도 있고 기력도 남아 있어서 이럭저럭 처자식 굶기지 않고 근근이 살아오는 바이지만, 다른 별장 포수 사수 하사관들은 왕십리에서 별의별 짓을 다하여 살아간다오. 소 닭 개도 잡아다 내고, 미나리 배추 푸성귀 농사에, 인분도 퍼 나르고, 원산 철원 거쳐오는 다락원에 나아가 북어를 떼어다 행상질까지 하오. 그것도 재주가 남다른 자나 할 수 있는 것이지 일반 병졸들은 제 입에 겨우 풀칠하기도 어려워 다리 밑 빈민들이나 매한가지라오.

나도 병영에서 나와 동료 별장들과 병졸들 인솔하여 숭인문 쪽으로 나갔지. 벌써 하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기별을 알아차린 군교 병졸들이 무리를 지어 선혜청 앞마당에 모여 있었는데 배급이 시작되어 장교와 별장들이 나서서 장사진을 만들어 질서 있게 받도록 했지요. 헌데 앞줄에서 먼저 급료 배급을 받은 병사들이 몰려서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소. 내가 몰려선 이들을 헤치고 들어가본즉 낯익은 별장 하나가 제 배낭의 급료미를 들추다가 한 줌 쥐어서 날려보더란 말요. 그리고는 대번에 뒤집어서 땅바닥에 줄줄 쏟아보이는 게요. 살펴보니 쌀은 절반이오 모래와 쌀겨가 푸실푸실 날리더란 말이지. 이것을 사람 먹으라고 주는 거냐? 일 년이 넘도록 곡식 한 톨 주지 않다가 식구들의 굶주림을 애걸하였더니 겨우 한 달 급료를 이제 주면서 그것을 또한 도적질하였으니 이런 군대가 있느냐? 위로는 영장과 병조판서 선혜청 당상부터 모조리 쳐 죽여야 될 놈들이다. 제각기 떠들기 시작했고 나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터져 올라옵디다. 여기저기서 자기의 급료미도 확인하여 보고 쏟아버리기도 하면서 배급하는 도봉소(都捧所) 앞으로 몰려가 우선 선혜청 서리들을 두들겨 패고 책임자로 나와 있던 선혜청 당상과 병조판서 겸직인 민겸호의 청지기와 그 수하 하인들을 거의 죽도록 때려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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