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스태프로 일하려면 돈 받을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게 나아요. 대부분 감독들이 ‘술 사줄 테니까 일한 건 퉁치자’고 하죠. 박봉의 청년 영화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 걱정을 덜어주고 싶어 협동조합을 선택했습니다.”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 변진영(21ㆍ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 휴학중)씨는 최근 협동조합 공부에 열심이다. 같은 학교 학생 9명과 함께 ‘모두를 위한 극장’이라는 이름의 청년영화인 공정영화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미디어 교육, 영화 제작 등 여러 사업 모델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지만 목표만은 뚜렷하다.
7일 성공회대에서 열린 ‘2012 청년 협동조합 컨퍼런스’에서 만난 변씨는 “청년영화인 중 93%는 비정규직이고 평균 연봉은 220만원에 불과하다”며 “왜곡된 영화시장 구조에 나 자신을 끼워넣기보다 함께 생산하고 소비하는 협동조합으로 새로운 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유엔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기념해 청년들에게 대안적 비즈니스 모델인 협동조합을 소개하기 위해 처음으로 열렸다. 행사 둘째날인 이날 변씨를 비롯해 놀이기획사 이웃의 송주희(32)씨, 청소년들에게 연기와 영상 교육을 하는 예비 사회적기업 시네마4쏘사이어티의 박상돈(37)씨 등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강단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전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들은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는 12월에 맞춰 현재 운영하는 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5명 이상이면 출자금 액수와 상관없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같은 협동조합 외에도 청소, 공동 육아, 노동자 협동조합 같은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창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행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을 따를 경우 조합원 300명에 출자금 3,000만원이 있어야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하다.
이들은 ‘민주적ㆍ비독점적 체제’를 협동조합의 장점으로 꼽았다. 영화 유휴인력 협동조합을 구상하고 있는 박씨는 “일부가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분배의 불균형은 영화산업 종사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대목”이라며 “일한 만큼 대가를 받기 어려운 대다수 영화인에게 협동조합은 반가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년 전부터 문화예술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는 송씨도 “일단 지역에서 조금씩 규모를 확장해가며 협동조합으로 자본의 힘을 이겨보겠다는 계획”이라고 답했다. 송씨는 지역 공방에서 만든 도자기나 목공품 등 생산품을 판매한 이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협동조합을 시작한다.
협동조합을 어떻게 키워나갈지도 큰 숙제다. 송씨는 “협동조합의 성패는 사람에 달렸기 때문에 결국 인적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지속가능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컨퍼런스를 기획한 장승권 성공회대 경영학부 교수는 “협동조합이 자본금이나 경제활동영역의 한계 등 불리한 점도 있겠지만 민주적 기업을 창업하려는 청년들에게는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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