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사거리 건물 4층에 떡 하니 새로 달린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검은 고딕체로 쓰인 누구누구네 권투장. 예전 같았으면 내 일 아니고 동네 형 일이야, 하며 지나치고 말았으련만 가만 서서 잠시 어떤 망설임 속에 있었더랬다.
붉은 글씨로 '다이어트하실 여성분들, 적극 환영'이란 세세한 설명이 글쎄, 내 가던 길을 멈추게 하더란 말이다. 전화번호부터 저장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복싱에 입문하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회사 상사에게 말을 꺼냈더니 대뜸 이런 반응이 전해져 오지 뭔가.
"오, 좋은 생각이야. 늘 수비 전형이라 아쉬웠는데 복싱이 적극적인 자세로다가 공격성을 길러주기도 하거든." 기 센 척하지만 그걸 표현할 줄 몰라 억울한 상황에서도 매번 주먹 한번 길게 뻗지 못한 나, 그래서 피하거나 도망치며 살았나. 그러나 참 묘한 게 내가 글러브를 껴야 할 당위를 보다 근원적인 데서 찾으려니 뒤로 주춤 자꾸만 발을 빼게 되더란 것이었다.
복싱을 시작한 뒤 체지방율 0%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탤런트 이시영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게다가 얼마 전 서울시 주최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48kg급에서 우승을 했다지. 이렇게 날씬하고 예쁜 여자가 왜 두들기고 두드려 맞는 스포츠에 미쳤을까, 이해를 해보려는 와중에 무릎을 치게 만든 그녀의 한 마디. 얻어맞는 게 무섭기는 하다고? 아, 그래서 때리는구나!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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