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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각하와 일본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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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각하와 일본매미

입력
2012.07.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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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로터리 어딘가에 엔까를 사랑하던 대통령 각하의 동상이 하나 있었다. 이 동상은 각하가 이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 각하의 은공을 많이 받은 어떤 마을 유지가 그 은혜에 보답고자 자비를 들여 세운 것이었다. 그러다 각하가 못 된 신하의 총탄에 맞아 비명횡사 한 후, 평생에 은공을 못 잊는 이 유지는 귀하신 각하의 동상이 혹여 불온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할까 걱정이 되어, 결국 마을 뒷산 울창한 숲속 사유지에 소중히 모셔두고 각하의 탄신일이나 기일에 은밀히 찾아가 정성으로 예를 다하였다.

세월이 흘렀다. 유지도 세상을 떠났다. 동상은 비바람 맞고 녹슬어 기억에서 사라져 갔고 사람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숲에 나무들은 푸른 잎이 무성해져 하늘을 뒤덮었다. 옹달샘에 물은 넘쳐나 시내가 되어 흘렀고, 샘물 주위로 새들은 둥지를 틀고, 작은 산짐승들이 시냇가를 찾아가 목을 적시며 뛰놀았다.

숲은 풍성하게 자라났고 그럴수록 각하의 동상은 점점 작아져 보였다. 이제 더 이상은 각하의 동상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일본 매미가 나타났다. 이 매미는 보통 매미 보다 몸집이 작았고 날개에 붉은 점들이 박혀있었다. 그 날개 속은 뒤집어 펼쳐보면 날개에 있는 점 보다 더 빨간 점들과 검은 반점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징그러웠으나 첫눈엔 화려해 보였다. 사람들은 매미의 출현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몇 마리 매미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에 큰 지장도 없고, 무릇 자연엔 언제나 천적이 있어 흉물스런 일본 매미들도 곧 사라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처음엔 한 마리 두 마리 꽃잎처럼 슬며시 날아와 나뭇잎에 살짝 앉더니 점점 그 수가 증가하여 급기야 수백 년에 걸쳐 자라온 토종 나무들에 납작 달라붙어 그 몸뚱이를 자근자근 갉아 먹고 뜯어 먹기 시작했다. 천적 없이 종횡무진 횡포를 부리며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는 이 일본 매미들은 모든 나무를 말라 죽게 만들고 순식간에 그 울창했던 숲은 점차 초라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숲이 죽어가자 옹달샘도 말라갔고, 시냇물은 이제 자취도 없이 먼지만 날린다. 산은 순식간에 민둥산이 되었다. 산짐승과 새들의 울음소리도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먹이를 찾지 못해 말라죽은 야생동물의 시체만이 산에 널려 있었다. 더 이상 생명은 없었다.

그러나 종횡무진 위협적인 이 일본 매미들도 각하의 동상만은 갉아 먹지도 뜯어 먹지도 못했다. 야산 한 가운데 우뚝 솟은 각하의 낡은 동상만이 이제 이 민둥산의 주인으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각하와, 각하의 시절을 흠모하던사람들이 하나 둘 검은 세단차를 타고 마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국화꽃 한 다발씩 들고 동상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 엔까를 부르고 춤추고 통곡하며 추모의 의식을 나누었다. 방문객은 날이 갈수록 늘어 만 갔고, 마을사람들은 불어나는 외지인의 인파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나 넘치는 방문객에 비해 하나 밖에 없는 동상 때문에 방문객들은 몇 시간이고 줄을 서야하는 고충을 헤아린 마을 사람들은 동상을 더 만들기로 했다. 각하의 사람들이 몰려들수록 동상도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각하를 기억하기 위해 야산에 더 크고 더 번쩍이고 더 다양한 동상 들을 만들어 세웠다. 누워있는 동상, 서 있는 동상, 물구나무선 동상, 삽을 든 동상까지도 만들었으며 어떤 동상은 술을 마시고 있고 혹은 심지어 누워서 오줌을 싸는 동상까지도 만들어 세웠다. 급기야 산에는 운주사 천불천탑처럼 수 천 개의 각하를 흠모하는 가지각색의 동상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제 각하의 탄신일, 서거일이 되면 수백 만 명의 참배객들이 드글드글 그의 가련한 딸과 추모행렬을 이루며 숲이 말라버린 이 황량한 야산에 찾아들게 되었다. 숨 쉬는 것이라고는 하늘을 온통 뒤 덮어 해를 가리고 있는 매미 떼 들 뿐 이었고, 그 어두움 밑으로는 각하의 동상만이 태연하게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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