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와인 한 잔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직업이 소믈리에 입니다."
16년 역사의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첫 2연패 기록을 세운 이승훈(33)씨는 소믈리에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프랑스 농식품수산부 주최로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제11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쥐었다. 지난해 대회의 영광을 이어간 것이다. 한국 소믈리에 대회는 격년제로 진행되다가 2006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호텔리어였던 아버지와 한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이씨는 "병상에 계신 아버지가 가장 기뻐할 것 같다"고 했다. 어린 시절 어버지를 따라 집에서 칵테일을 만들었던 꼬마가 어느 덧 정상의 소믈리에로 성장한 것이다.
올해는 역대 대회 중 가장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쳤기에 이씨의 우승은 돋보인다. 200여명이 3월부터 1, 2차 예선을 치러 8명의 결선 진출자가 가려졌다. 결선 진출자들은 고객 응대 및 서비스 능력 평가, 메뉴에 따른 와인 추천 능력, 소믈리에로서의 태도 평가 등 소믈리에가 갖춰야 할 기술적인 부분과 덕목을 다양하게 평가 받았다. 특히 결선엔 역대 우승자들이 대거 포함돼 경쟁은 더욱 치열했다. 장 파스칼 포베르 보르도 앤 아끼뗀 지역 소믈리에 협회 명예회장은 "결선 진출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한국의 소믈리에들이 와인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국 최고의 소믈리에를 향한 그의 꿈은 2008년부터 본격화됐다. 이때부터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해오고 있는 그는 첫 출전 때만 빼고 모조리 결선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소믈리에 업계에선 "정상에 다가섰다"는 얘기가 나왔고, 마침내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대회 2차 예선에선 치즈전문가를 가리는 테스트도 1등으로 통과해 '그랑프리 프로마쥬' 상까지 받았다.
그는 의외로 겸손했다. "행운의 여신이 지켜주고, 아내가 곁에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부인 이수정씨 역시 이번 대회에서 8명이 오르는 결선에 올라 5위에 입상했다. 부부가 나란히 입상하는 새로운 기록까지 세웠다. 이수정씨는 "남편은 대회 내내 경쟁자였지만 부부여서 서로 의지하며 대회를 치렀다"고 했다.
이씨가 소믈리에 대회 출전을 결심한 것도 부인 덕분이다. "대학 졸업 뒤 결혼해 아내와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1년 만에 문을 닫았어요. 그때 와인도 팔았는데 지식이 없으니 잘 될 리가 없었죠. 아내가 이때 와인 공부를 시작했고, 저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씨 부부는 2007년부터 프랑스 등 유럽을 돌며 와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보르도 와인협회 인증 강사 자격증과 미국와인교육자협회 와인전문가 자격증(CSW)을 차례로 따면서 실력을 쌓아갔다. 그렇게 습득한 와인 지식을 밑천으로 심기일전해 2007년 부산에 레스토랑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최고의 소믈리에로 우뚝 선 그는 양산대 호텔관광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에게 와인의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강의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것도 적지 않다고 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빨리 배우고, 결과도 빨리 보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건 아닙니다.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쳐야 양질의 와인이 나오듯 기본기가 탄탄해야 좋은 소믈리에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급증을 버리고 꾸준히 도전해보세요."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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