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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분배의 실패는 용서가 안 된다

입력
2012.07.0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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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실패한 자는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 군에서 훈련을 받던 시절, 배식 당번들이 앞줄 병사들에게 밥을 많이 퍼주는 바람에 뒷줄 병사들이 밥을 못 먹게 되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구대장이 중대원들을 모아놓고 했던 훈시다.

우리 사회에 경제민주화와 무상보육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언뜻 별개의 논제 같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맥락이 통하는 측면이 있다. 분배의 정의라는 점에서다. 분배 정의는 자원의 합리적ㆍ효율적 배분이라는 단순한 경제학적 개념에, 불평등과 갈등을 조절하는 윤리ㆍ규범적인 요소가 가미된 개념이다.

1980년대 정치적 민주화의 핵심이 권력적 측면에서 독재타파였다면, 지금 논의 중인 경제적 민주화의 핵심은 부의 측면에서 독점타파라고 볼 수 있다. 각각 권력과 부의 독점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식자들이 경제민주화 문제를 놓고 헌법 조항의 취지를 따지며 왈가왈부하지만, 굳이 그럴 것도 없다. 민주주의가 헌법에 없어서 군부가 독재를 한 것은 아니다. 경제민주화 조항이 없어서 재벌이 부를 독점한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부르짖은 상생ㆍ공정이라는 모토는 결국 재벌의 이익을 동반성장이라는 인위적 장치를 통해 중소기업과 국민들에게 흘려 보내 분배정의를 다소나마 실천해보자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를 하자는 주장이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듯, 경제민주화 하자는 것이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면 반재벌로 몰고, 반대하면 친재벌로 낙인 찍는 매카시즘적 논의 구도로 흘러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전면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은 일종의 배식 실패로 간주된다. 이념적 차원에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인 차원에서 재원의 합리적 배분이라는 원칙도 위배했다. 민주통합당이 추진한 무상급식이 배부른 자에게 추가 배식을 하게 된 것이나, 이에 질세라 새누리당의 전면 무상보육이 예산부족으로 오히려 못 가진 자에게 혜택을 빼앗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제민주화의 경우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모두가 추구하는 이념이지만 정치적 스펙트럼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전면 무상보육의 경우 서울시장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무상급식에 일격을 당한 새누리당이 추진했다가 뒤늦게 문제가 발생했다. 좋게 말하면 양당의 이념과 정책이 다소 수렴한다고도 하겠지만, 실제 추구하는 방법론과 정치적 속셈은 아주 다른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이 두 이슈에 대한 논의의 방향은 궤도에서 상당히 어긋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친재벌 대 반재벌'의 논쟁으로, 무상보육 논의는 '포퓰리즘 대 반포퓰리즘'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정책에서 보듯,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분배정의를 실천하는 방법론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혜택을 받을 대상과 자격을 정확히 심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마이클 센델도 에서 정의는 좋은 것이지만 분배의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하지만)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센델의 지적처럼, 정의를 고민하고, 분배를 이해하는 방식이 개인별, 집단별로 많이 달라 지금과 같은 정치권의 싸움질로는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 논의 과정에서 정작 주요 내용이 실종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건전하고 합리적인 논의 과정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극단화한 싸움으로 끝나는 과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경험해왔듯 '진보 대 보수' 논쟁의 경우 결국은 '빨갱이 대 수구꼴통' 논쟁으로 결말이 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진심으로 정치권이 마음을 열고 머리를 맞대야 분배정의에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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