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쎈돌'이 농심배 예선에서 무명 초단에게 뼈 아픈 일격을 당했다. 지난 4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제 14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대표선발전 예선 1회전에서 이세돌이 2009년 입단한 김현찬에게 패해 일찌감치 탈락했다.
이세돌은 지난 해에도 비교적 쉬운 상대로 여겼던 이형진(2단)에게 져 탈락하는 등 유난히 농심배와 인연이 없는 편이다. 농심배 14년 동안 불과 두 번 밖에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2009년 10회 때는 한국팀 4번째 선수로 출전해 중국의 창하오와 구리를 연파하고 한국의 우승을 결정지었고, 12회 때는 자청해서 선봉장으로 나서 2승을 거두더니 씨에허에게 져 물러났다. 그 외에는 네 번이나 예선 결승에서 졌고 두 번은 예선에 불참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초반 탈락했다.
이세돌이 본선에 합류하려면 주최측 와일드카드로 선정돼야 하지만 이는 그야 말로 주최측 의사에 달린 일이므로 결과는 미지수다. 이세돌은 그동안 번번이 이창호에 밀려 한 번도 와일드카드로 선정되지 못 했다.
요즘 이세돌의 컨디션이 엉망인 것 같다. 농심배 뿐 아니라 다른 기전에서도 아주 성적이 좋지 않다. 대국 내용도 별로다. 그동안 이세돌은 정교하고 깊은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특유의 '닥공 바둑'으로 전세계 바둑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요즘은 제대로 수읽기가 안 되는지 이세돌의 공격이 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해도 물가정보배 본선 리그서 김지석 윤준상에게 잇달아 고배를 마셔 8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고, 여자 최강 박지은과 한 팀을 이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SG페어대회 8강전에서 조한승-오정아 페어에 졌다. 그리고 이번 농심배까지 최근 치른 10경기 성적이 5승5패에 그쳤다.
사실 이세돌의 부진은 이미 올 초부터 시작됐다. 1월 12일 맥심배 본선 8강전에서 최철한에 패한 것을 시작으로 1월 17일 원익배 본선 16강전(상대 홍기표), 2월 6일 바둑왕전 패자 4회전(상대 백홍석), 3월 17일 비씨카드배 본선 32강전(상대 당이페이), 5월 25일 응씨배 본선 16강전(상대 판팅위), 6월 20일 LG배 16강전(상대 스위에)에 이르기까지 상반기 중 벌어진 주요 국내외 기전에서 잇달아 패해 초반에 탈락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국수가 줄어들어 올해 성적이 19승 12패(승률 61%)로 승률 45위, 다승은 50위도 채 안 된다. 그래도 다행히 5월에 GS칼텍스배 결승서 박영훈에게 3대2로 이겨 우승한 덕분에 상반기 중 상금 랭킹 3위를 해서 겨우 체면을 지켰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춘란배 올레배 GS칼텍스배 등 3관왕이지만 대진표에 아직 이름이 남아 있는 기전은 춘란배 8강, 바이링배 32강, 국수전 16강 정도다. 명인전에서는 주최측 시드를 받아 본선 16강전에 직행했다. 한국바둑리그서 6승1패를 거둬 신안천일염을 1위로 끌어 올렸고 중국 을조리그서 6승1패를 한 게 오히려 놀랍게 생각될 정도다.
1983년생인 이세돌은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 됐다. 승부사로서 서서히 노쇠현상이 시작될 나이다. 최근의 부진이 일시적인 슬럼프인지,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든 것인지 아직 속단키는 이르지만 분명 과거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더욱이 1992년생 박정환이 올 상반기에 다승 승률 연승 등 각 부문을 휩쓸었고 6월과 7월 벌써 2개월 째 국내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이세돌과의 랭킹점수 차이도 6월에 28점에서 이달엔 42점으로 더욱 벌어졌다. 요즘과 같은 추세라면 차이가 점점 더 벌어져 1위 탈환이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90후 세대'가 정상권으로 올라섰다. 이제 한국 바둑계도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시작된 느낌이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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