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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인체쇼핑' 자본주의와 몸섞은 생명공학 인체조직, 상품으로 전락하다

입력
2012.07.0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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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쇼핑/ 도나 디켄슨 지음ㆍ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발행ㆍ312쪽ㆍ1만5000원

최근 만난 한 의사는 제대혈(탯줄혈액) 은행을 두고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혹평했다.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은 치료 효과를 갖고 소비자를 현혹해 이윤을 남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사람 몸에서 나온 어떤 것도 명확한 근거나 보편적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건 용납될 수 없다며 그 의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책도 제대혈 은행을 비판한다. '사기'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지 등장하진 않지만, '미래의 건강'과 '현재의 안전' 중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진지한 의문을 던진다. 줄기세포와 조직기증, 유전자 특허, 안면이식, 미용성형 등 의학과 생명공학의 핫 이슈를 넘나들며 저자의 질문은 계속된다. 새로운 생명공학 기술이 나올 때마다 우린 해바라기처럼 그 기술이 가져다 줄 혜택만 바라본다. 이 책은 그 혜택을 누리기도 전 이미 우리의 권리를 뺏기고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일깨운다.

제대혈에 대해 저자가 가장 문제 삼은 건 '현재의 안전'이다. 사람들은 제대혈을 얻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대부분 못한다. 책에 따르면 제대혈은 보통 분만 후가 아니라 분만이 진행되는 동안 채취된다. 특히 많은 사설 제대혈 은행이 출산 후반부(분만 3기)에 채취하길 선호한다는 것이다. 신생아가 나온 직후인 3기에는 신생아가 몇 번 숨을 쉬면 바로 탯줄을 묶어 자르고, 탯줄을 살살 잡아당겨 태반이 빠져나오게 한다. 이 과정이 빠를수록 산모도 태아도 안전하다. 태반이 자궁에 오래 붙어 있을수록 출혈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대혈은 태반이 여전히 자궁에 붙어 있을 때, 심지어 신생아가 첫 숨을 쉬기 전에 탯줄을 묶어야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공공 은행이 아닌 사설 은행이라면 가능한 많은 양의 제대혈을 원하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알면 소비자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저자는 되묻고 있다.

많은 제대혈 은행이 그냥 두면 버려지는 제대혈을 '고맙게도' 주워다가 보관까지 해주는 것처럼 선전한다고 지적하는 대목에선 저자가 분노한다. 자연스러운 분만 때보다 탯줄을 일찍 묶으면 신생아에게로 피가 충분히 흐르지 못한다. 제대혈이 신생아에게 많이 전달될수록 신생아의 몸에서 철분 저장량과 적혈구 수가 늘고 빈혈 발생이 줄며 모유 수유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냥 버려지는 피는 아니란 근거다.

이에 비해 제대혈이 '미래의 건강'을 보장할 만한 의학적인 근거는 불충분하다고 책은 주장한다. 특히 골다공증이나 면역결핍증 같이 사설 은행들이 나열한 질병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근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혈액 관련 병력이 있는 가족이 아니라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자신의 혈액이 필요할 확률은 의학적으로 2만분의 1에 불과하다. 결국 제대혈 은행을 접하는 산모들은 미래에 만에 하나 일어날 지 모르는 일을 위해 현재의 위험을 무릅쓰고 돈까지 내며 자신의 몸의 일부를 내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의사나 과학자들이 암 연구에 흔히 쓰는 재료 중에 'HeLa'란 세포가 있다. 분열 능력이 아주 뛰어나 실험용기에 담고 영양성분 같은 배양조건만 잘 맞춰주면 빠른 시간 안에 급격히 수가 불어난다.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암세포 연구에 안성맞춤이다. 이 세포는 실제로 암 환자의 몸에서 얻었다.

1951년 헨리에타 랙스라는 미국의 한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했다. 암 검사를 위해 랙스에게서 채취된 암세포는 그녀가 사망한 뒤 그녀 이름의 앞 글자를 딴 HeLa란 이름으로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랙스의 유가족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24년이 지난 1975년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한 인터뷰에서 "나도 모르게 아내의 세포를 팔아서 돈벌이를 한다니 정말 불쾌하다. 아내와 저는 착취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이후 비슷한 일을 겪은 미국 남성 존 무어는 자신의 세포와 비장을 떼어내 연구에 이용한 의료진과 제약사를 상대로 1984년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자기 몸의 일부로 만들어진 수익의 일부는 자기 재산이라는 무어의 주장은 안타깝게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무어는 결국 사망했다. 여전히 연구용으로 쓰이고 있는 랙스와 무어의 세포가 인류에게 정확히 얼만큼의 이익을 가져다 줬는지까지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사람 몸에서 나온 세포나 조직, 장기 등의 소유권이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기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이처럼 몸의 일부가 연구용으로,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데 사람들이 둔감해진 이유는 과학 발전이 가져오겠다는 미래의 모습이 워낙 강렬해서일 것이다. 성급한 과학은 자신이 만들 미래를 장밋빛으로 멋들어지게 포장했고, 부주의한 언론은 이를 그대로 대중에게 전달해왔다. 책은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줄기세포라고 말한다. 2005년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좋은 사례로 소개했다.

저자는 '언론과 달리 줄기세포 전문가들은 종종 줄기세포 연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고 했지만, 이젠 반대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최근 연구현장에서 만난 한 홍보담당자는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다른 분야에 비해 유독 홍보에 열을 올려 곤란할 때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설익은 연구결과라도 과한 의미를 부여하며 알리고 싶어한다는 소리다. 줄기세포 하면 만병통치약처럼 여겨 연구비가 몰리는 현상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절실한 환자들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라도 받기 위해 아예 규제가 덜한 외국을 찾아 나서고 있다. 치료비용은 어쩔 수 없다 쳐도 그 과정에 드는 교통비와 숙박비 등이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또 그렇게 쓰이는 줄기세포 역시 누군가의 몸에서 나왔을 터다.

의료윤리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사람 몸의 일부가 이처럼 연구나 의료라는 명목 아래 명백히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상을 '인체쇼핑'이라고 못 박는다. 과학의 오만함과 대중의 무심함이 인체쇼핑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말이다. 책을 덮고 나면 줄기세포가 '채취'되거나 유전자가 '특허' 대상이 되거나 제대혈에 돈을 '지불'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몸은 결코 소비재가 아니니까.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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