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더니 프로축구 최고의 잔칫날 비가 내렸다.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2 월드컵 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 2012'는 장맛비가 퍼붓는 악천후 속에 열렸다. 그러나 아쉬움은 없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도 10년 전 한반도를 들뜨게 했던 축구 열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식히지 못했다. 빗줄기 속에서도 3만 7,155명의 팬들이 모여든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그라운드와 관중석은 뜨거웠다.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냈던 태극 전사들은 '팀 2002'라는 이름으로 10년 만에 거스 히딩크 감독 휘하에 재집결했다. 축구화를 벗은 지 오래된 이들이 다수를 이뤘지만 열정은 여전했다. 팔팔한 K리그 올스타로 구성된'팀 2012'를 상대로 70분간 기대 이상으로 잘 버텨냈다.
'팀 2002'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는 최용수(39) FC 서울 감독. 최 감독은 올스타전 개최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10년 전의 한을 반드시 풀겠다'고 별러 왔다. 4일 열린 팀 공개 훈련에서는 대포알 같은 슈팅을 터트리며 의욕을 보였고 "반드시 골을 터트리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최 감독은 한일 월드컵 당시 출전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다. 황선홍 포항 감독, 안정환 프로축구연맹 명예홍보대사에 밀렸다. 미국과의 조별 리그 D조 2차전에서는 후반 교체 출전해 절호의 결승골 찬스를 놓쳐 성토의 대상이 됐다. 최 감독이 10년 만의 명예 회복을 벼른 이유다.
최 감독은 베스트 11에서 제외됐지만 전반 24분 출전 기회를 잡았다. 제자 최태욱, 현영민(이상 서울) 등과 함께 그라운드에 나섰다. 그라운드를 밟자마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 감독은 설기현(인천)이 내준 패스를 골 지역 오른쪽에서 왼발 강슛으로 마무리, 골 네트를 갈랐다. 포효하며 유니폼 상의를 벗어 젖힌 최 감독은 두둑한 뱃살을 드러내며 팬들에 폭소를 선사했다. 최근 끝난 유로 2012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의 '악동 스트라이커' 마리오 발로텔리(맨체스터 시티)가 독일을 상대로 골을 터트린 후 펼쳤던 골 세리머니를 패러디한 것. 최 감독은 그렇게 10년 전의 아쉬움을 씻어냈다.
10년 전 전국민을 흥분시키던 월드컵을 외면한 사나이가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고배를 들었던 이동국(33ㆍ전북)이다. 축구 인생 최대의 시련이었다.
올스타전 그라운드에서 10년 만에 히딩크 감독과 재회한 이동국은 세 번이나 시원한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전반 17분과 19분, 후반 33분에 차례로 골 네트를 갈랐다. 6-3 승리를 이끈 이동국은 한국 축구 최고 스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제치고 경기 MVP에 선정되는 기쁨을 안았다. 이동국은 경기 후 기자단 투표에서 110표 가운데 34표를 얻어 박지성(33표), 최용수(30표), 에닝요(9표) 등을 따돌렸다.
그를 제치고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던 스트라이커들은 '흘러간 이름'이 됐지만 이동국은 여전히 건재했다. 프로축구 최고의 해결사임을 월드컵 4강 멤버들 앞에서 확인시키며 10년 전의 아픔을 깨끗이 털어냈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10년 전 선수들과 만나게 돼 개인적으로 무척 감동적"이었다며 "이제 파티는 끝났다. 악천후 속에서 경기를 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태용 팀2012 감독도 "패스 타이밍 같은 면을 보면 2002년 선수들이 어떻게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는지 알 것 같다"며 "두 팀 선수들이 팬들을 위해 즐겁게 잘 싸워줬다"고 말했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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