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유감(sorry) 외교’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클린턴은 3일 파키스탄에 ‘유감이다’는 한마디 말로 7개월간 악화해온 양국 갈등을 풀었다. 동시에 사과(apology)과 아닌 유감이란 표현을 사용, 파키스탄에 굴복했다는 공화당 공세도 피해갔다. 보통 유감은 미안하다는 느낌을 말하지만,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동이 포함된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유감 발언을 사과로 여겨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언급을 피해 그 차이를 간접 인정했다.
클린턴의 정치력이 절묘하게 드러난 유감외교는 수개월 진통 끝에 나왔다. 파키스탄은 7개월 간 파키스탄을 경유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아프가니스탄 보급로를 막았다. 지난해 11월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자국 군인 24명이 사망한 데 따른 보복이었다. 국무부는 사고 초반 백악관에 파키스탄이 요구하는 사과를 요청했으나, 국방부의 반대에 부닥쳤다. 국방부는 미군이 고의로 오폭을 했다는 파키스탄 군의 주장에 분개했다. 사과 문제를 놓고 올 봄까지 최소 8차례 고위급 국가안보회의가 백악관에서 열렸다. 결국 백악관이 사과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으나, 그 사이 파키스탄 상황은 급속히 악화했다. 파키스탄 의회가 양국관계 재고를 요구하고, 파키스탄 정부는 사과요구를 철회하며 갈등 수위를 높여갔다. 뒤이어 파키스탄이 본거지인 하카니 계열 탈레반이 아프간 카불 주둔 NATO군을 공격해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백악관이 파키스탄 사과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놓았고, 의회에선 초당적인 파키스탄 때리기가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힐러리의 유감 발언에 파키스탄은 놀라움을 표하며, 즉각 국경을 개방하겠다고 반겼다. 지금까지 ‘안타깝다’ ‘애도한다’는 말을 해온 미국이 사과의 수준을 높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공화당 린드세이 그래엄 상원의원도 “파키스탄 국경 보급로는 아프간 주둔 미군 지원에 필수적”이라며 “클린턴 팀의 협상조건이 국익에 용인될 만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파키스탄 양국의 불만을 모두 만족시킨 클린턴의 유감 발언이 정치적으로 잘 조율된 것이라며 호평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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