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길 건너편에서 용산 참사가 나는 걸 보고도 여기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세입자가 몇이나 있겠어요? 재개발 추진으로 이곳에서 장사하던 250가구가 다 떠나고 이제 아홉 개 점포만이 남았죠.”
2009년 1월20일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두 개의 문’이 지난 4일 개봉 2주만에 관람객 2만명을 돌파하면서 최근 용산역 주변 재개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와 용산구청에 따르면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용산 국제빌딩 주변 도시환경사업 4구역은 사건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시행사를 선정하지 못하는 등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반면 4구역 길 건너편, 용산역 바로 앞에 자리한 용산역 전면 3구역은 2008년 11월에 재개발 관련 관리인가 처분이 내려진 뒤 90% 정도의 철거가 이뤄진 상태이다.
5일 비가 내리는 이곳을 찾은 기자는 자신 삶의 평생 터전이라며 철거작업이 진행중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강제 철거반대 운동에 매달리고 있는 몇몇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30년째 군인용품 전문 가게를 운영해온 허모(54)씨는 “우리 집을 포함한 세 집은 조합과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옷 가게와 만두 가게 등 여섯 곳은 전국철거민연합과 함께 철거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며“강제 철거가 이뤄질 경우 용산 참사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허씨는 4일 서부지방법원으로부터 한 달 이내에 건물을 비울 것을 명시한 ‘명도 계고장’을 받았다. 용산역 전면 3구역 조합이 낸 명도 소송에서 세입자들이 패소했기 때문이다. 그는 용산참사를 떠올리며“솔직히 무섭고 두렵죠. 그렇다고 보상금 1,980만원을 받고 길거리로 나 앉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라고 말했다.
철거가 90% 진행된 용산역 전면 3구역은 앞으로 허씨 가게를 포함해 9개 점포에 대한 철거작업 이후 총 2만4,788㎡ 부지에 지하 9층, 지상 40층 규모의 주상 복합 2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럴 경우 이곳은 용산 전자상가 인근에 조성될 용산국제업무지구와 함께 용산 개발의 큰 축을 차지하게 된다. 여기에 미군 기지 부지에 들어설 242만 6,866㎡ 규모의 용산 민족공원까지 더해지면 용산은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용산구 한강로 3가의 H 공인중개사 관계자는“한때 환락가로 오명을 떨쳤던 용산역 앞 상가 밀집 지역이 재개발되면 용산의 핵심 지역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이런 기대 효과로 인근 부동산 가격이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조합과 세입자간 갈등이 커지면서 제2 용산 참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철거민들에 대한 명도 계고장이 발부됐지만 조합이 강제 철거에 나서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며 “양측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조합측에 협력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도시정비과 관계자도 “앞으로 일방적인 강제 철거가 없도록 하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의지에 따라 현황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재개발의 인ㆍ허가권자인 용산구청이 중재에 적극 나설 것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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