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한 번 이긴 방법으로 다시 이길 수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전승불복(戰勝不復)'이 민주통합당 대선 전략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02년 대선 승리 모델인 '호남을 기반으로 한 영남 후보론'을 똑같이 반복해서는 대선 승리가 어려우므로 전략의 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쪽은 우선 '비노(非盧)'진영 대선주자들이다. 영남 후보인 문재인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지사를 겨냥해 친노 성향의 영남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설 경우 2002년의 반복에 불과해 국민적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김영환 의원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루 앞둔 4일 "영남후보론은 노 전 대통령의 성공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경로 의존성의 산물"이라며 "이미 식상할 대로 식상한 모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경로 의존성'은 한 번 경로가 형성되면 관성 때문에 계속 그 길에 의존하는 성향을 뜻하는데, 다른 분야와 달리 변화무쌍한 정치 환경에선 이 관성을 떨쳐 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2002년 대선 당시만 해도 1997년 대선 승리의 경로였던 'DJP 연합', 즉 호남과 충청의 지역연합론에 다시 의존하려는 기류에 따라 '이인제 대세론'이 득세했지만, 이 경로를 파괴하며 바람을 몰고 온 것이 노무현의 '영남후보론'이었다.
새누리당 출신의 강창희 신임 국회의장도 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에서 같은 방법으로 두 번 승리할 수 없다"며 "도식적인 선거운동 방법으로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거들었다. 손자병법 제6편 '허실(虛實)'편에 나오는 '전승불복 응형무궁'(戰勝不復 應形無窮 ㆍ 전쟁의 승리는 반복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을 인용하면서 혁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충고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도 최근 '영남후보 한계론'을 주장하며 수도권 후보론을 내세우고 있다. "수도권 3%가 영남권 10%와 맞먹는다"며 부동층이 많은 수도권 중도층을 공략해야 효율적이라는 게 손 고문 측의 전략이다. 영남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지층이 견고한 '레드 오션'이 됐으므로 수도권이 오히려 '블루 오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주장의 첫째 타깃은 당내 지지율이 가장 높은 문재인 고문이다. 하지만 문 고문 측은 "대선 전략을 예전의 지역연합 구도로 보는 것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다"며 '영남후보론'을 거론하는 것 자체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문 고문 측도 '영남후보론'을 반복해선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문 고문이 내세우는 것은 "민주개혁세력 전체의 연합"이다. 과거의 지역 연합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 연합의 대표 주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공동정부'를 제안한 것도 이런 전략에 따른 것이다.
같은 영남 후보에다 친노 성향의 김두관 지사도 '전승불복'을 의식한 듯 새로운 전략을 찾고 있다. 김 지사가 일찌감치 '친노 비주류'를 자처하며 '비욘드 노무현'을 외치는 것은 2002년 모델을 계승하되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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