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관은 억류자의 수갑을 채우고 똑바로 일으켜 세워 잠을 못 자게 한다. 음식을 계속 먹인다. 이때 억류자는 벌거벗긴다. 소음을 사용한다. 심문은 멈추지 말 것. 지금까지 소개한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기술들이 사용됐다. 수면 박탈, 벌거벗기기, 음식 먹이기, 독방 감금, 물 끼얹기, 뺨 때리기, 불편한 자세.'
2004년 12월 30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법무부에 제출한 심문 기술 보고서의 일부 내용이다. 일급비밀이라는 분류 표기와 함께 건조한 단문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테러 용의자를 붙잡아 비밀장소에 가두고 자백을 받아내는 절차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보고서에 나열된 CIA의 '심문 기술'은 1975년 유엔에서 채택되고 87년 발효된 고문방지협약에 명백히 위배되는 고문 행위다.
인권단체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3일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CIA와 미군에 의해 자행된 고문 실태가 담긴 정부 비밀 문건 5,000여건을 웹사이트(www.thetorturedatabase.org)에 공개했다. ACLU는 2003년 10월 정보공개법을 근거로 관련 자료를 청구했고, 법원은 이듬해 9월 미 정부에 자료 공개를 명령했다. 이중 CIA의 구체적 고문 수법이 담긴 메모 4건을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한 적은 있지만, 문건 전체 공개는 처음이다. 오바마는 메모 공개 당시 "CIA 요원에 대한 처벌은 없다"고 말했다.
ACLU는 2004년 5월 CIA 감찰국이 작성한 특별보고서를 가장 의미있는 문건 중 하나로 꼽았다. 2001년 9ㆍ11테러 이후 CIA가 가동한 테러용의자 감금ㆍ심문 프로그램의 반인권적 요소를 조사한다는 취지의 이 내부 보고서에는 조사관들의 무자비한 고문 사례가 다수 열거돼 있다. 한 조사관은 심문 과정에서 수갑 찬 용의자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고 전기 드릴로 위협했다. 용의자가 토할 때까지 담배를 피우게 한 조사관도 있었다.
법무부의 2005년 5월 메모는 고문 과정에 CIA 고위급 간부들이 깊숙이 개입했음을 보여준다. 메모에 따르면 테러용의자 아부 주바이다는 비밀장소에서 82차례에 걸쳐 물고문을 당한다. 그럼에도 주바이다가 자백하지 않자 현장 조사관들은 그가 "결백하다"고 판단하지만, CIA 수뇌부는 조사관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 번 더 고문하라고 지시한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이 메모에서 "CIA의 심문 방식은 고문금지협약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모순된 결론을 냈다.
알렉산더 앱도 ACLU 상근 변호사는 "미국이 저질렀다고 믿기에 너무나 충격적인 실상"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은 그간 벌어진 고문 행위를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