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제부터 진검승부가 시작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일간 경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3개사는 최근 2~3년간 대규모 리콜과 대지진, 부품기지인 태국 대홍수, 엔고 등으로 심각한 생산 및 판매 차질을 빚었고, 그 틈을 타 현대ㆍ기아차는 미국시장에서 대약진을 이뤄 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과거 충격에서 벗어난 일본차들이 절치부심 대대적 반격에 나서면서, 작년과는 '게임의 판세' 자체가 달라졌다는 평가다.
4일 미국 자동차 통계 전문회사인 오토데이타에 따르면 올 상반기 현대ㆍ기아차의 미국시장 판매량은 64만5,376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4% 증가했다. 미국의 실물경기 부진을 감안하면 두자릿수 성장률을 이뤄낸 건 상당한 선전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일본차들의 반격속도는 훨씬 더 무섭다. 상반기 도요타는 104만6,096대로 팔아, 전년동기대비 29%의 판매증가율을 기록했다. 혼다 70만982대, 닛산은 57만7,721대로 각각 15%와 14%가 증가했다.
6월 실적만 보면, 일본차들의 약진은 훨씬 가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도요타의 지난달 판매량은 17만7,759대로 1년전 대비 무려 60%나 늘어났다. 혼다(12만4,808대)와 닛산(9만2,237대)도 각각 49%와 28%가 증가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시장에선 일본차에 대한 신뢰가 미국차보다도 높은 편인데, 이런 옛 명성을 거의 복원했다는 평가다.
반면 현대ㆍ기아차는 6월에 11만5,139대를 판매, 10%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 역시 작년 실적을 뛰어넘는 호성적이긴 하나, 일본차의 반격이 워낙 거세다 보니 현대ㆍ기아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9%에서 8.9%로 약간 밀려났다.
한 현지소식통은 "일본차들은 최근 2~3년의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더구나 그간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전례 없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작년까지 누렸던 현대ㆍ기아차의 반사이익은 이제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ㆍ기아차는 일본차와 점유율 싸움을 벌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금 물량공세를 펴고 가격인하로 맞불을 놓았다가는 다시 '싸구려 차'이미지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 높여야 할 것은 점유율이 아니라 브랜드가치"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지난 4월 신형 아제라(그랜저)를 출시하며 가격을 이전 모델에 비해 25% 올렸고, 현재 판매중인 엘란트라GT(i30) 가격도 20% 인상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 이 관계자는 "도요타 등의 공세가 강력하지만 제값 받기 전략을 바꿀 생각은 없다. 하반기 아반떼 2도어, 신형 싼타페가 새롭게 출시되면 흥미진진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세계 3대 시장에서 현대ㆍ기아차가 가장 선전하는 곳은 유럽시장이다. 재정위기의 진원지로 극심한 실물경기침체에 빠져있음에도 불구, 유럽시장에서 현대ㆍ기아차는 '나홀로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유럽 승용차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4% 줄었지만, 현대·기아차는 15.9%의 성장률을 보였다. 유럽 최대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이 5.7% 감소한 것을 비롯해 PSA(푸조ㆍ시트로엥 -19.5%), 르노(-13.1%), GM(-8.4%) 등이 뒷걸음질친 것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현대ㆍ기아차의 탄력이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지난달 말 해외법인장 회의를 전격 소집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의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시장에서도 글로벌 메이커들의 격전이 임박했다. 현대·기아차는 올 들어 5월까지 50만대의 판매실적을 기록, 올 판매 목표 125만대는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폴크스바겐, GM 등 중국내 빅2와 함께 도요타가 세계유일의 성장시장인 중국에 대한 공세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어, 현대ㆍ기아차 역시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세계 3대 시장에서 지금까지는 모두 목표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 내부 판단"이라며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는 만큼 치밀한 대응에 나서겠지만 과거처럼 물량ㆍ가격공세로 나설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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