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현 정권 출범 1등 공신인 정두언 의원이 검찰 수사 대상에 함께 오른 것을 두고 새누리당 안팎에선“참 공교롭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동고(同苦)하며 권력을 만들었지만 집권 이후 원수마냥 갈라섰고, 결국 정권 쇠락의 뒤안길에 동일 사건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검찰로 불려가는 두 사람의 인연은‘공교롭다’는 표현 그 이상이다. 당 관계자는 4일“훗날 사극에서 다룰 법한 애증과 암투의 드라마가 두 사람 사이에 펼쳐진 셈”이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은 이명박 정부를 만든 대표적 공신이었고, 좌우의 날개였다. 두 사람의 앙상블이 있었기에 이 대통령은 탄생할 수 있었다. 5년 전 당시 이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하자 캠프 사무실 한 켠에서 얼싸안고 기뻐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생생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동락(同樂)하지 못했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이었다. 정 의원이 추천한 인사들이 잇달아 ‘물’을 먹었다. 크고 작은 인선 과정에서 두 사람 갈등이 표면화했다. 여러 오해까지 겹쳐졌다. 결국 이 대통령이 형의 손을 들어줬고, 정권 초반 파워게임에서 정 의원은 밀려났다.
정 의원의 반격이 시작된 것은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서였다. 이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항명 파동’이 있었다. 주동자 명단에 정 의원의 이름이 있었다. 이후 정 의원은 이 전 의원을 겨냥해 본격적으로 포문을 열었다. ‘권력 사유화’‘국정 농단 세력’이란 포탄이 이 전 의원의 오른팔로 알려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향해 날아갔다. 이 전 의원 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정 의원을 겨냥한 총리실 사찰이 시작된 것이 이즈음”이라고 정 의원 측은 주장해왔다.
두 사람 사이엔 깊고 넓은 골이 파졌다. 2010년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회복 불능의 악연으로 거듭 났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정 의원은 청와대를 향해 날을 세운 ‘여당 내 야당’’쇄신파’로 변신했다. 이 전 의원은 ‘자원외교’에만 집중하겠다면서 정치 불개입을 선언했다.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이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약간 누그러지긴 했으나 두 사람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끝날 것 같던 두 사람 인연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점에 검찰에 불려가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다시 한배에 타게 됐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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