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집권하기 전부터 서민 경제 회복을 필두로 한 실용주의적 노선을 외쳤다. 도덕과 윤리는 완전히 무시하면서 서민 경제만은 살리겠다고 선전했다. 물론 성적표는 초라하다. 핵심 공략이던 747 공약은 반 토막이 났고, 경제가 살아나면 장사가 잘되겠지 하던 동네 슈퍼는 문을 닫은 지 오래됐다. 만약이라도 내세운 공약이 대부분 실현됐다 해도 따지고 보면 서민 경제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공약들이 서민 경제 회복과는 실제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에게 '서민'은 감성을 가진 단어일 뿐이며, 이 감성은 선거가 끝나면 그 힘을 잃게 된다.
서민을 위한 정책들이 또 한 번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또 한 번 표를 얻겠다는 심산으로 경제정책을 내놓았다. 이번에 내놓은 강령은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이다. 최근 술렁이고 있는 반재벌 정서를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만 들어도 뻔히 속이 보이는 너무나 상투적인 정책들이다. TV 드라마도 상투성을 버리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마당에 정치판은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 포퓰리즘 정책이 유행이던가? 여야를 막론하고 표를 얻기 위해 앞뒤를 안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막무가내식 정책이 우리를 또 한 번 꿈꾸게 한다. 못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보다 앞으로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희망고문이 더 아프다. 그런데 아픈 사람들을 모아 놓고 원숭이를 앞세워 만병통치약이라고 팔고 있다.
하긴 지금 시기가 딱 서민정책들이 펼쳐질 시기다. 하지만 서민이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다. 서민이란 단어 속에 너무 많은 것을 쑤셔 넣었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인들의 가장 나쁜 습성이다. 그들은 말끝마다 서민, 서민 하고 있다.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 서민은 목돈이 필요해도 손 벌릴 데가 없다. 서민에게 금융기관의 문턱이 높아서다. 빚을 안고 집을 산 서민들은 집값이 내려가 고민이다. 새로운 정책으로 서민들의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등등 순전히 표심을 위한 정책들만 쏟아져 나온다. 해결은 하지 못하면서 걱정은 태산이다. 이맘때쯤이면 늘 도는 걱정들이다. 각종 신어들이 탄생하면서 위기론은 거세진다. 시민 대부분을 99%로 묶어 그 위기감 속에서 떨게 한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 서민들은 돈이 없어 전셋값을 돌려주지 못하고, 대출이 어려워 높아진 전세금을 감당하기도 어렵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집을 팔고 싶어도 제대로 거래가 되지 않아 걱정이다. 이제 1,000조원에 육박했다는 가계대출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책이 세워지지만, 개선이 되지 않는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물가는 한없이 오르지만, 빚더미에 앉은 가계소득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서민경제 활성화 정책을 구경만 했는가? 하나, 하나가 실로 너무나 감상적이고 우아한 정책들이다. 갈수록 무리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일요일에 마트에 못 가게 하는 바보 같은 정책이 아닌 정말 실용적인 서민 경제정책 몇 개만 펼쳐낸다면 조금은 살만해 질 것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더 큰 위기를 만들어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 못된 짓이다. 사실 원칙 없는 경제 정책이 위기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왜 누구나 아는 사실을 크게 부풀리고만 있는가. 정권이 위기에 몰리면 북한 문제와 경제위기론을 써먹으라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라도 하는 것 같다. 서민들에게 집과 차를 사주고 중산층으로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더 넓게 바라보고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선거 유세 때에만 시장에 들러 국밥만 먹지 말고 하루만 진짜 서민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를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경제는 개선의 대상이 아닌 공약의 대상이다. 해결할 과제가 아닌 선전용으로만 이용되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우리는 진짜로 아픈데 사기꾼들이 자꾸 가짜 약만 팔고 있다. 진짜 의사가 필요하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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