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소동을 둘러싸고 외교안보라인 내 책임 떠넘기기 추태가 점입가경이다. 청와대는 주무 부처인 외교부에 책임을 미루고, 외교부는 청와대가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고 반발한다. 실무교섭을 주도해왔던 국방부는 협정 서명은 외교부의 일이라며 일찌감치 발뺌했다. 국정의 궁극적 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이"절차가 잘못됐다"며 마치 제3자 입장인 것처럼 질책하고 나선 데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어제는 실무를 담당한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외교부에 책임 떠넘기기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설사 그게 사실이라도 주무 부처의 일개 국장에게 밀실ㆍ졸속 처리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치졸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주도로 이 협정 추진과정 전반에 대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니 결과를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세한 잘잘못을 가리기 앞서 이 정부 외교안보라인 전체의 안이한 자세와 무능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5월 말 김성환 외교부장관 주재로 열린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6월 말까지 일본과 협정에 서명하기로 방침이 정해졌다고 한다. 당시 김 장관을 비롯한 관계부처 장관들과 청와대의 외교안보 비서진은 한일관계의 특수성에 비춰 이 협정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었을 터이다. 당연히 국무회의 처리 방식, 국민과 정치권을 상대로 한 설명과 설득 방안에 대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의 흔적이 전혀 없다. 적당히 비공개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랬다면 안이와 무능 그 자체다.
잇단 스캔들로 국민적 분노를 샀던 외교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외교를 하겠다"고 다짐해왔지만 공염불이었음이 드러났다. 청와대의 책임도 무겁다. 대외협상과 국민정서에 대한 종합적인 정무판단은 국내적 감각이 부족한 외교부보다는 청와대 참모진의 몫이다. 실무를 담당한 외교부의 책임이라는 식의 떠넘기기는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다. 희생양 찾기 진상조사에 매달릴 게 아니라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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