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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 기사로 본 한국 현대사의 지적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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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 기사로 본 한국 현대사의 지적 자화상

입력
2012.07.0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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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출신 언론인 장준하가 창간한 <사상계> 는 한국 언론사상 최고의 지식인 잡지다. 6ㆍ25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4월 1일 창간돼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정치 풍자시 '오적(五敵)'을 실었다는 이유로 강제 폐간되기까지 <사상계> 는 동시대와 호흡하는 지성의 좌표로서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4ㆍ19혁명 이후 전성기에는 발행 부수가 6만 5,000부에 이르렀다. " <사상계> 끼고 다니지 않으면 대학생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영향력은 대단했다.

신간 <냉전과 혁명 그리고 사상계> (소명출판 발행)는 <사상계> 에 실렸던 기사를 분석해 전후 한국 현대사의 지적 자화상을 돌아본 연구서다. 국문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인문학자들이 모인 사상계연구팀이 2004년부터 해온 작업의 결실이다. 정치ㆍ경제ㆍ사히ㆍ문화를 아우르는 종합교양지였던 <사상계> 의 면모를 다각도로 재조명하고 거기서 펼쳐진 담론의 성격과 한계를 규명했다.

이 책은 1962년 말까지의 <사상계> 를 검토했다. 주목한 만한 것은 지금까지 <사상계> 를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민족적 저항 잡지'라고 부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 점이다.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시기는 4ㆍ19혁명 전후 잠깐이며, 당대의 한계와 여러 제약으로 인해 반공주의 틀 안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4ㆍ19혁명에 열광했던 <사상계> 필자들이 5ㆍ16군사정변이 나자 함석헌을 뺀 대부분이 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선 사실을 지적한다. 혁명 후 등장한 장면 정부에 실망한 나머지 이들은 5ㆍ16군사정변을 4ㆍ19혁명의 연장선으로 보고 환영했다는 것이다. '민족적 저항 잡지'로서 논조가 다시 분명해진 것은 한일회담 반대 투쟁이 본격화한 1963년 이후이며, 그때부터 <사상계> 는 반독재 투쟁의 보루가 됐다.

책은 2부로 돼 있다. <사상계> 가 창간되기까지 해방과 전후 사회정치적 현실과 당대의 담론을 1부에서 다루고, 2부에서는 <사상계> 에 실린 기사들을 문화적 정치학적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1963년 이후의 <사상계> 는 다음 책으로 미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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