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도리 없이 죽는다.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이 풍진 한세상을 살다가 어느 날 저 세상으로 건너간다. 가는 날을 미리 알 수 있으면 그에 맞춰 대비하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으련만 죽음은 그렇게 예고하며 다가오지 않는다. "나 오늘 갈란다."하고 떠나가는 고승대덕의 이야기는 예외요 설화일 뿐이다.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 죽음은 늘 두려운 존재다.
■ 그래서 사람들은 웰 빙(well-being)과 함께 웰 다잉(well-dying)을 연구하는가 보다. 2000년판 은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웰 다잉의 기본요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톨스토이의 말대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는데도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준비는커녕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연고 없이 방치된 채 죽어가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 일본에서 한 해 1만 5,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사회문제화한 고독사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일이 됐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는 무연(無緣) 1인 가구는 다 '고독사 우려 인구'로 봐야 한다. 그들은 주로 독거노인들이지만, 최근에는 50~60대의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에서는 50대 미혼여성이 숨진 뒤 굶주린 두 마리 반려견에 의해 시신이 훼손된 채 발견된 일도 있다. 연고자가 없어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화장터로 바로 가는 직장(直葬)도 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독사를 막기 위해 마을공동체를 복원키로 한 것은 좋은 방안이라고 본다. 올해 725억 원을 들여 종합지원센터를 설치, 마을공동체 돌보기를 지원하고 마을기업 육성, 마을 예술창작소 조성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이웃의 보호와 관심 속에 서로 정을 주고받고 살면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전통사회는 동네사람들 모두가 함께 아이를 키웠고, 동네사람들 모두가 어른의 죽음을 함께 맞이했다. 그런 관계를 되살리면서 노인들을 위한 죽음교육도 병행하기 바란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