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ㆍ졸속 처리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지난 4월 23일 가서명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논란이 증폭되면서 외교안보 정책결정 라인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협정의 추진 절차상 문제점을 강하게 질타했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협상 추진 과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자 책임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먼저 이번 협정의 실무를 주도한 외교통상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야권의 정치공세가 거세지고 여권의 대선주자 일부가 이에 호응할 경우 외교안보라인의 한 축인 김성환 외교부 장관이 김황식 총리 대신에 책임론 유탄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정부가 희생양을 찾아야 할 경우 김 장관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총리가 불신임 대상이 되면 외교부와 국방부 장관도 불신임안에 포함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들은 "장관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협정 추진에서부터 서명 전격 연기로까지 번지는 과정에서 매끄럽게 일 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수긍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번 사안의 실질적인 '주연'은 외교부가 아니었다는 이유를 댄다. 또 김 장관은 이번 협정이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통과됐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수행하고 있었다.
국방부도 이번 파문을 초래한 협정의 일차적인 주무 부처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1월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계기로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실무협상에 착수했고, 4월에는 협정 가서명을 주도했다. 또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여야 정책위의장이 협정에 동의했다"고 주장하다가 하루 만에 말을 바꿔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게다가 2010년 12월 장관에 취임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19개월째 장관직을 수행하는 점 등을 고려해 국방부 수장이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협정에서 외교부와 국방부는 조연에 불과하므로 총지휘를 맡은 청와대 관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 대한 사퇴 압력이 거세다. 김 기획관은 이번 협정 추진을 총괄 지휘했을 뿐 아니라 공개 추진 시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밀실 처리를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을 여러 번 지적했다"면서 "의결 당시 언론에 알리지 않은 것은 청와대 의중 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즉 밀실 처리를 지시한 게 청와대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도 트위터에 "이 문제를 주도한 김태효 기획관부터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김황식 국무총리를 정조준하며 사퇴 또는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김 총리는 한일정보보호협정이 통과된 그날 국무회의에서 사회를 보며 협정 체결안을 '즉석 안건'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임기가 7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 김 총리만한 대체 인물을 찾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김 총리를 유임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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