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4월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가서명(initialing)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정부는 그 동안 가서명 사실을 국회와 여야 정당에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가서명은 협정 문안을 사실상 확정하는 절차로, 정부의 가서명 시점은 6월 26일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협정 체결안을 처리하기 두 달여 전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정치권과의 협의나 여론 수렴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협정을 체결하려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3일 외교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신경수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육군 준장)과 오노 게이이치 일본 외무성 북동아과장은 양국의 협상 대표 자격으로 4월 23일 도쿄에서 협정안에 가서명했다.
당초 한일 양국은 5월 초 국방장관 회담을 갖고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었다. 가서명은 이 같은 스케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담 개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방일은 5월 말로 미뤄졌고 여론이 악화돼 끝내 무산됐다.
외교부는 5월 14일 확정된 협정문을 법제처에 보내 법령심사를 의뢰했다. 이에 법제처는 6월 22일 "국회 동의 없이 서명해도 된다"고 외교부에 통보했다.(본보 6월 30일자 3면) 국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정부 마음대로 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5월 17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만나 "한일간 군사협정을 졸속으로 처리하지 않고 앞으로 국회 차원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처리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이어 임관빈 국방부 정책실장과 조세영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6월 21일 여야 정책위의장을 찾아갔지만 협정 추진 경위와 취지만 설명했을 뿐 가서명 사실은 철저히 숨겼다. 정부는 논란이 많았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 가서명 이후 협정안을 공개했고, 이후 주요 문구를 수정할 때도 국회와 언론에 알렸지만 이번에는 비밀주의로 일관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김성환 장관은 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협정 체결을 비공개로 진행한 것은 국민을 무시한 처사 아니냐'는 질문에 "일본과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나요. 양국 간 절차가 끝나지 않아 협정을 공개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답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과 함께 5월 말에 서명할 예정이었던 군수지원협정도 가서명이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가서명은 정부 틀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대통령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통상적으로 국회 비준이 필요 없는 협정은 가서명 단계에서 굳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과의 군수지원협정은 서로 이견이 많아 가서명은 아직 멀었다"고 해명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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