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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엄마라는 이름의 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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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엄마라는 이름의 해결사

입력
2012.07.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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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기말시험 답안을 채점 중인 교수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 과목을 수강한 아무개 아무개의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교수님, 우리 아이 성적 나쁘게 주시면 큰일 납니다." 큰일이라니 무슨 큰일? "애가 안 듣겠다는 걸 제가 우겨서 그 과목을 수강하게 했거든요.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왜 곤란한데요? "제가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이럴 때 교수들은 성적이 좋고 나쁘고는 학생 책임이지 왜 그걸 엄마 책임이라 생각하느냐고 따져 묻지 않는다. 성적이 좋으면 그것도 엄마 덕분이라 말할 거냐고 되묻지도 않는다. 그런 엄마를 설득하자면 시간 걸리고, 설득해보려는 시도도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을 교수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휴우, 한숨 한번 내쉬고 잠시 창밖의 먼 산 뜬구름이나 쳐다보다가 하던 일로 서둘러 되돌아가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의 심사는 편치 않다.

엄마는 물론 위대한 존재다. 영유아기 아이들에게 엄마는 거의 절대적인 양육자, 보호자, 공급자다. 대개 13세까지의 아이들에게도 엄마(그리고 아빠)는 거대한 울타리, 안내자, 모델이다. 성장의 일정 시기까지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양육, 보호, 안내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엄마는 위대하다. 그 엄마에게 제1의 관심사는 아이들을 잘 키워낸다는 것이다. 집단적으로도,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회가 불문율로 받아들이는 공통의 책임이다. 이 책임의 개별적 수행자가 엄마다. "아이들에게 해코지 하지 말라"는 것은 비록 '10계명' 같은 종교적 계율에는 안 들어 있을지 몰라도 역시 모든 인간 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명령'이다. 이 명령의 본능적 수행자도 엄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때나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불문율이나 "아이들에게 해코지하지 말라"는 명령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인가, 어떻게 키우는 것이 아이들을 해코지 하지 않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수반한다. 그 질문은 양육이라는 생물학적 책임의 수행 이상으로 중요한 사회적 책임을 엄마에게 부과한다. 엄마가 위대해지는 것은 그 질문 앞에서 엄마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위대한 경험적 직관, 상식적 분별, 건강한 판단을 행사할 때다. 그 직관과 분별과 판단은 평범한 것일지 몰라도 바로 그 평범성 안에 아이들을 키우는 법에 대한 위대한 통찰과 진리가 담겨 있다. 그런 통찰과 분별력을 가진 엄마는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아이에게 제발 좋은 점수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전화질이 바로 '몰상식'의 범주에 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몰상식을 밀고나가는 것이 아이를 잘 키우는 일도, 엄마의 역할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몰상식 사례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다반사가 되어 있다. 엄마가 모든 문제의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문화'가 온 사회에 널리 퍼지고 있다. 그 문화는 대학교육의 독이다. 그것은 제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고 제 손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들, "엄마, 어떻게 좀 해줘"라고 노상 매달려야 하는 아이들, 모험과 탐험과 개척에 나서기를 극단적으로 꺼리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길러 놓는다. 그렇게 자란 상당수 아이들을 어떻게 독립적 개체로 바꿔놓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지금 대학교육의 큰 과제다.

어떤 해결사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에겐 독립성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우리(부모)가 끝까지 안고 갈 거니까요." 그런 엄마는 아들딸이 판사가 되어 임지에 부임했을 때도 부장판사에게 전화해서 "우리 애는 아무것도 몰라요. 잘 봐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런 엄마는 자신의 처신과 행동방식이 자녀의 성숙과 행복을 가로막는 최대의 해코지가 된다는 생각은 해볼 틈이 없다. 그 해결사 엄마들에게 길고 긴 행운이 있기를.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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