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국보 151-3호) 보관처를 둘러싸고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중인 사고본에 대해 문화재청이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기라고 결정하자 서울대측은 물론, 환수운동을 벌이며 전시관까지 짓고 있던 오대산 월정사 측이 반발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3일 “2006년 도쿄(東京)대가 돌려준 47책과 경성제대 시절부터 소장하던 27책 등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史庫本) 74책의 관리단체로 국립고궁박물관을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5일자 관보(官報)에 게재된다.
문화재청은 “서울대 규장각에는 오대산 사고본 74책뿐만 아니라 정족산 사고본 1,181책을 갖고 있어 실록 훼손 위험을 분산하고, 일반인이 실록을 관람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하기 위해 이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서울대 규장각과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 2곳에서만 소장하고 있다.
또한, 올 1월 서울대가 법인으로 전환된 것이 이번 실록 오대산 사고본 이전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왕조실록ㆍ대동여지도 등과 같은 지정문화재는 국가(문화재청)가 관리ㆍ총괄하는데, 지난해 서울대가 법인화함으로써 실록을 국립고궁박물관이 관리하도록 절차를 밟은 것이다.
문화재청 최종덕 문화재보존국장은 “연초부터 서울대와 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넘겨 받기 위해 협의해 이전에 동의를 구했으며, 6월 14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도 마쳤다”며 “지난 주에는 서울대가 소장한 실록 오대산 사고본 74책을 고궁박물관으로 옮기겠다는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록 이전과 관련, 지금까지 보관 중이던 서울대 측과 원래 보관지로 환수운동을 벌이고 있는 강원 평창 월정사 측은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서울대 홍보관계자는 “박명진 부총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아직 정확한 입장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문화재청의 결정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록이 다른 기관으로 옮겨지면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작업이 불안정해질 것”이라며 “문화재가 학술ㆍ연구 대상인지, 전시ㆍ보존의 대상인지에 대해 입장 차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동 서울대 기획부처장은 “법인화의 기본 취지가 교육 연구의 자율성을 높여 세계 수준의 대학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문화재청이 이전 일자를 확정하지 않은 만큼 협조를 구하는 절차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창 월정사 측은 “문화재는 원래 제자리에 있어야 빛나는 법인데, 구체적인 협의없이 실록 관리단체가 선정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올 초부터 월정사에 오대산 사고본 보관을 위한 전시장을 짓고 있는 가운데 환수가 물거품이 돼 허탈하다”며 “애초부터 문화재청이 오대산에 넘겨줄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월정사측은 조선왕조실록 환수시 보관시설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국비와 도비 등 120억원을 들여 올해 초부터 전시관을 짓기 위해 설계에 들어가 내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조선왕조실록 및 왕실의궤 제자리 찾기 범도민 추진위원회 박재현 사무국장은 “조선왕조실록은 선조들의 분산 보관의 지혜를 되살려 본래 소장한 지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며 “문화재청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승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현명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올해 초 평창군은 “규장각에 임시 보관중인 오대산 사고본에 서울대 측이 날인을 해 국보를 임의로 훼손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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