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부터 동해안이 서해안보다 좋았다. 물 맑기나 차기가 비교가 되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백사장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서해안의 백사장은 예외는 있을지언정 개흙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어딘가 칙칙했다. 반면 동해안의 백사장은 유리를 잘게 부숴놓은 듯 멀리서는 희고, 가까이서는 밟으면 뽀드득 하고 소리가 날 듯했다. 국토 분단 이후 원산의 명사십리(明沙十里)가 남하를 거듭하며 동해안 곳곳에 비슷한 별명을 남긴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 그 너른 백사장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오래 됐다. 1980년대에 처음 들었고, 90년대 이후 연례행사 같았다. 비명이 컸던 만큼 진단과 대책도 쏟아졌다. 그런데도 요즘 다시 백사장 유실ㆍ침식 소식을 듣는 걸 보면 온갖 방안이 무효했던 모양이다. 백사장 유실로 올 여름 문을 닫을 동해안 해수욕장이 여럿이고, 관광수입 감소 등 주민 피해 우려도 크다. 지난해 국토해양부의 조사에서 동해안 34곳 가운데 31곳이 C(우려)ㆍD(심각) 등급에 머물렀다.
■ 지적된 원인이 숱하고 저마다 다른 걸 보면 과학도 헛되다. 백사장 유실은 옮겨져 쌓이는 모래보다 파도에 쓸려나간 게 많아서 일어난다. 유입 감소의 이유로는 하천 하구관리에 따라 바다에 흘러 드는 토사가 줄고, 해안도로를 비롯한 인공시설물이 토사 순환을 가로막고, 해안 고층 구조물이 바닷바람의 모래 운반을 줄인 것 등이 지적된다. 유출 측면에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인공구조물에 의한 해류 변화 등이 주된 요인으로 거론돼 왔다.
■ 어느 진단에나 이견과 반박이 따른다. 거꾸로 조금만 눈을 길게 뜨면, 백사장 침식 자체가 자연변화의 단면이다. 사행천(蛇行川)의 굴곡이 심해져 사주(沙洲)를 만들듯, 역사 이전부터 해안선은 늘 변화해 왔다. 그나마 강릉의 백사장은 줄고 속초의 백사장은 는다니, 더하고 빼서 변화가 없는 것만도 다행이다. 10만 년 넘게 자연변화에 대응해 온 인간이 뒤늦은 엄살에 매달리는 대신 현지 주민의 적응속도에 발맞춰 조금씩 피서지를 옮겨도 될 일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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