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추적자> 가 섬뜩하다. 권력과 돈, 야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상이야 처음도 아니니, 그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살인까지 교사한 주인공 강동윤(김상중)의 철저한 위선이 소름 끼친다. 추적자>
그는 그것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대선가도를 위협하는 크고 작은 장애물을 돌파해 나간다. 그에게 희생된 딸의 복수에 나선 백홍석 형사(손현주)가 권총까지 겨누며 "단 한번이라도 제발 진실을 말해보라"고 절규해 보지만 소용없다. 이제 시청자들조차 바람난 아내와의 화해, 과거에 대한 고백, 재벌총수인 장인 서 회장(박근형)과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치적 야망을 위한 '연기와 쇼'란 사실을 알았으니까.
배우들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연기는 곧 삶이고, 삶은 곧 연기이다. 얼마든지 연기를 삶처럼 보여줄 수 있고, 삶을 연기처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을 발표하면서, 아픈 과거를 고백하면서 그들이 쏟아내는 눈물조차 의심스럽다. 더구나 그 눈물이 카메라나 대중들 앞에서 흘리는 것이라면. 진심인지, 연기인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 것이다. 다만 스타일수록 그의 모습이 진실과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실체보다는 이미지가 더 그럴듯하고, 사람들 역시 그 이미지에 매달리니까.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운동선수든 일단 스타가 되면 '인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인기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버리고, 사생활도 팔고, 거짓 눈물도 얼마든지 흘린다. 스타에게는 인기가 곧 권력이고, 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인기란 놈의 속성이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니엘 부어스틴이 <이미지와 환상> 에서 말했듯이 스타와 영웅은 다르다."영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영웅이 되지만, 유명인(스타)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름을 잃는다. 영웅은 반복해서 만들 수 없지만 유명인은 얼마든지 반복해서 만들 수 있다." 이미지와>
스타는 미디어와 대중의 열광이 만들어 주지만, 스타를 하루아침에 버리는 것도 그들이다. 그들에게 스타는 상품에 불과하다. 그들은 상업성과 대리만족을 위해 정치에서, 대중문화에서, 스포츠에서 늘 새로운 상품을 찾는다. 없으면 '조작'을 해서라도 만들어낸다. 그런 그들이 한국 최초, 세계 최고의 '피겨의 여왕'을 놓칠 리가 없다. 더구나 연예인 못지 않은 연기력과 미모까지 갖추었으니.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서,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연기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결과와 과정 모두에서'영웅'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순간 스무 살의 소녀는 영웅보다는 '인기와 돈'이 보장되는 스타이기를 원했다. 얼싸 좋다 하고 미디어는 그녀의 인기를 오락으로 화려하게 포장해 대중에게 팔았고, 기업들도 앞다퉈 그녀를 CF 모델로 내세웠다.
다른 스포츠 영웅들에게도 이런 유혹은 있었다. 당시 열아홉 살의 베이징올림픽 수영 영웅 박태환에게도 있었다. 그는'잠시'빠졌다가는 다시 한번 영웅이 되기 위해 돌아왔지만 김연아는 2년이 넘도록 '스타'로만 남기를 고집했다. 그러나 말로만 그렇지 영원하고 유일한 스타는 이 세상에 없다. 대중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김연아라고 예외는 아니다. 2년 전 세계를 감동시킨'피겨 여왕' 김연아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점점 지워지고, 대신 모델 김연아의 모습만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변화는 김연아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은퇴를 마다하고 그 고통스러운 스케이트를 신고 다시 얼음판을 달리겠다는 것이 스타로서'인기'에 대한 불안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역사 속의 영웅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다만 그녀의 말대로 이번 선택이 스타의 '연기'가 아닌 영웅으로서 새로운 도전이기를 빈다. 그녀 나이 이제 스물 둘이고, 소치 동계올림픽은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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