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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임진강 황포돛배와 4대강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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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임진강 황포돛배와 4대강 유감

입력
2012.07.0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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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너무 오래 가물어서였을까. 며칠 전 문득 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여의도에서 한강 유람선을 탈까 김포에 가서 아라뱃길 관광선을 탈까 저울질하다가 한강 유람선에 탔을 때마다 주변 인공경관에서 받았던 삭막감을 떠올리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소양강이나 충주호로 가자니 갈 길이 아득했다. 그러다 임진강 군사보호구역에 관광선이 다니기 시작했다던 오래 전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파주시 적성면 두지나루 황포돛배.

6ㆍ25 이후 반세기 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임진강에 관광유람선을 처음 띄운 건 2003년이었다. 그 무렵의 남북관계 전망이 괜찮았던 것이 군 관계자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돌이켜 보니 분단과 냉전의 유물들을 말 그대로 관광용 '유물' 취급했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지난 몇 년 새 그 '유물'들이 다시 살아나 생활에 개입하는 현상이 부쩍 늘어난 탓에 그런 시절이 정말 있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가는 길에 이정표는 잘 보였으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어려운 곳, 한적하다 못해 스산한 곳에 나루터가 있었다. 매표소 앞에서는 그 지역 특산물과 공예품도 팔고 있었는데, 공예품이나 장난감은 북한산처럼 조악해 보였으나 그게 오히려 옛 정취를 풍겼다. 배는 하루에 여덟 차례, 한 시간에 한 번씩 운행한다. 운행 시간은 40분. 승객이 8인 이하면 운행 취소. 배를 기다리는 사람 중 반은 작은 문화단체 회원들이었고, 그밖에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연인끼리 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황포돛배라고는 하나 겉만 옛 모습일 뿐 현대식 발동기선이었다. 50명을 채 못 태우는 작은 목선에 색깔만 누런 나일론 돛을 장식으로 단 배. 그렇지만 나무 갑판과 나무의자는 그런대로 옛날 배를 탔다는 느낌은 들게 해 주었다.

선장이 키를 잡은 채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기 왼쪽 절벽은 겸재 정선이 그렸던 임진 적벽입니다. 두 절벽 사이에 조금 평탄한 데가 보이죠. 그림에는 거기에 나귀 탄 사람이 있어요. 이 적벽은 화산암으로 된 주상절리입니다. 제주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임진강에도 있습니다…" 이어 그의 입에서는 미수 허목이 쓴 각자, 파주와 장단의 역사, 임진강의 물고기와 어부들, 분단 이전 한강과 임진강의 수상 교통과 상업, 고랑포의 지형지세, 6ㆍ25 당시의 고랑포 전투와 1ㆍ21 사태 때 김신조 일당의 침투 이야기 등이 계속 쏟아졌다. 그는 고랑포 전투 참전용사와 김신조가 그 배에 탔었다며 그들의 말도 전했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 안에는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의 경험까지 누적되어 있었다.

강변의 절벽, 멀리 보이는 산자락,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그 다리로 이어진 길, 그 길과 그 물에서 일하고 놀고 싸우고 창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 녹여 넣은 명강의였다. 슬라이드나 파워포인트 같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강의가 아니라 현장에 녹아들어가 오감에 함께 작용하는 산 강의였다.

한강에도 이런 배가 다니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바로 터무니없는 공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진 적벽은 겸재 그림 속의 모습 그대로지만, 광나루도 압구정도 양화진도 공암나루도 이미 옛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한강의 역사는 차라리 실내에서 옛 그림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는 편이 더 낫다. 한강변만이 아니라 한강이 담은 역사도 지금은 콘크리트 제방 안에 갇혀있다. 4대강 공사로 서울 앞 한강을 닮아버린 여주 조포나루에 생각이 미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람이 자연을 변형시키지 않고 살 수야 없지만, 자연에 새겨진 역사까지 지워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역사를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만드는 문화와 강변 풍광을 지켜보며 역사를 품어 안는 사람들이 만드는 문화가 같을 수는 없다. 역사를 잊은 사람들에겐 미래가 없고, 자연을 마구 바꾸는 사람들에겐 역사가 없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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