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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NIE] "소규모 학교, 경제 논리 앞세운 통폐합이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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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NIE] "소규모 학교, 경제 논리 앞세운 통폐합이 능사 아니다"

입력
2012.07.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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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는 한숨을 쉬셨다. "아빠가 졸업한 초등학교, 중학교는 이미 없어져 버렸고, 이런 상태라면 잘 나가는 고등학교도…." 씁쓸한 여운을 남긴 말씀이었다. 농촌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아빠의 입장으로서는 더 할 수 없는 서운함이 배어있었다.

최근 소규모학교 통폐합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을 볼 수 있었고,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의 학생 수도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빨리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나의 초등학교도 폐교라는 위기를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지금 사회는 경제성과 합리성이 지배하고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고, 거기에 조금의 비판도 허용할 틈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조금은 느리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던 교육에서의 경제 논리가 최근 급하게 속도를 높이고 있고, 여기에 소규모학교 통폐합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60명도 되지 않는 학교에 선생님이 학년 별로 있어야 하고 학교를 유지 관리하는 경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 경비를 줄여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줄인 경비를 좀 더 질 높은 교육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일 수 있다. 교육을 수량화하고, 계량화하고, 경쟁이라는 이념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리면 이 주장들은 옳을 수 있다. 더군다나 그 주장들이 힘을 얻으면서, 소규모 학교에서는 체육활동을 하기 힘들다, 혹은 아이들이 활발한 상호 작용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덕성이나 사회성을 기르기 힘들다는 등의 주장을 덧붙여서 말하고 있다. 억지 주장일 뿐이다.

불어난 물을 업어서 건너게 해주는 것은 '교육'이요, 그것이 안타까워 다리를 놓아 주는 것은 '행정'이라고 페스탈로치는 말했다. 지금 우리는 교육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행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규모 학교에서는 튼튼한 시멘트 다리를 놓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돌다리만 있어도 좋다. 거기에 맞게 자연과 함께하고 친구와 함께하고 선생님과 부모님이 함께하지 않겠는가? 교육은 교육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 소규모 시골학교 출신이 친구들과의 상호 작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아빠는 초등학교에서 50명 안 되게 졸업하였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만나고 친하게 지내고 계신다. 오히려 서울에서 이사 다니시면서 2부제 수업을 하셨던 엄마의 초등학교 친구는 없으신 것 같다. 중학교도 비슷하다. 소규모 학교라고 해서 상호 작용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일 따름이다. 오히려 왕따 문제는 학생이 많은 학교일수록 더 심하지 않을까?

또 계량화된 성적을 이야기한다. 소규모 학교 학생들이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고. 이것도 억지일 따름이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그저 재미있게 보낸 경험이 전부였다. 성적으로 부모님께 혼난 적도 없고,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 본 기억도 별로 없다. 태권도 학원에 다녀보기도 했고, 피아노 학원에 다녀 보기는 했지만 그것이 싫다고 하면, 부모님은 두 말없이 그만 두게 하셨다. 성적이 낮다고 불안해하시지도 않으셨다. 교육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분들은 모두 선생님이시니까. 다만 책을 많이 읽었고, 책을 읽은 후 저학년 때는 엄마와 말을 많이 했었고, 중학교 때는 언니와 말을 많이 했던 기억밖에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성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시 물어볼 일이다.

소규모 학교를 일정 규모의 물리적 환경으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소규모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 물리적 환경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사람과 사람, 선생님과 아이들,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고 있고, 그것이 물리적 환경보다 더 의미가 있는 환경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소규모 학교로 성공한 사례가 어떤 것인지 긍정적인 측면을 더 연구해서 장점을 살릴 생각을 해야 할 때이다. 이미 홈스쿨을 인정하는 나라도 많은데, 농산어촌의 소규모 학교는 그 규모에 맞는 제도, 5인 학교, 10인 학교 등 초미니 학교를 인정하고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학생만의 학교에서 벗어나 지역 공동체의 장으로 꾸며 나가는 새로운 교육의 대안을 만들 기회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충남 당진 서야고 3학년 신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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