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듬은 하나의 슬로건은 열 정책 안 부럽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주자 캠프가 '슬로건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이디어 찾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단문 메시지에 익숙해진 유권자들의 욕구를 꿰뚫기 위해 호소력 짙은 한 줄짜리 슬로건의 파괴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권자들의 충성도가 견고하지 않은 선거 초반에는 어떤 슬로건을 내놓느냐에 따라 해당 후보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여야 정치권은 요즘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 어떤 슬로건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총선을 거치면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각인시켰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민생과 미래, 함께 등을 키워드로 삼고 국민 가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슬로건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박(非朴)진영 대선주자들도 슬로건을 통해 박 전 위원장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의 핵심 슬로건은 '키다리 아저씨의 꿈'과 '위대한 국민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겠습니다'이다. '일자리' 창출과 교육을 통한 계층 '사다리' 기능 복원, 가족의 '울타리'강화 등의 복지 공약과 운율을 맞춘 슬로건이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내세운 '위대한 대한민국을 향한 행진으로의 초대'와 '119대통령'은 각각 보수층 표심 공략과 기동력 있는 리더십 부각 등을 노린 메시지이다. 이재오 의원의 '가난한 대통령, 행복한 국민'은 23평 주택에 사는 자신의 '청빈'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대표 공약인 '분권형 대통령제'를 담아내기 위한 것이다.
야권에선 우선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제시한 '저녁이 있는 삶'이 평범한 직장인들의 요구를 압축된 메시지로 잘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은 근로시간을 축소해 직장인들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보낼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윤희웅 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1일"고령층을 상대로 한 전달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 대선의 슬로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보통사람이 주인인 우리나라 대통령'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선 사회 통합 의지를 강조했다는 평가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백성의 아들' '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서민의 정치'를 강조해 온 김두관 경남지사는 '평등과 2030의 희망'등을 새로운 슬로건에 담을 것으로 전해졌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빚 없는 사회와 편안한 나라'를 통해 가계 부채 해결 의지 등을 담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5월 말 부산대 강연에서 복지ㆍ정의ㆍ평화를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했다. 안 원장은 이 세 가치를 축으로 이달 중순 발간될 에세이집에서 자신의 슬로건을 우회적으로 밝힐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해당 주자의 정치 역정과 보폭을 맞춘 슬로건이라야 유권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전략가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감성을 건드리는 슬로건은 단기적으로 호의적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면서도 "설득력 있는 정책과 후보의 실천 능력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유권자의 투표 행태까지 좌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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