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신용카드로 모든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원 카드(one card)' 전략으로 카드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습니다."
올해 3월 초 KB국민카드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 최기의(57ㆍ사진) 사장은 새로 선보인 '혜담카드'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혜택을 골라 담는다'는 의미의 이 카드는 고객이 카드사가 제시한 12가지 서비스 중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상품.
최 사장은 "어떻게 하면 한 장의 카드에 여러 장의 기능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며 "비용 절감 차원에서도 통합카드의 도입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상품이 출시된 2월 말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토록 갈망하던 '혜담'이가 왔다"고 적는 등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런데 불과 4개월 뒤인 지난달 28일, 최 사장은 이 카드를 개발한 A부장을 지방으로 발령 조치했다. 정기 인사가 아니라 A부장을 겨냥한 돌발 인사였다. A부장은 상품개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업계에서도 인정받던 인물. 한 카드사 관계자는 "누가 봐도 혜담카드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틀림없다"고 했다. 도대체 혜담카드 출시 이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최 사장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매달리던 상품의 개발자를 문책 조치한 걸까.
혜담카드 출시 3개월도 지나지 않은 5월 11일 KB국민카드 측은 고객들의 서비스 선택권을 대폭 축소했다. 당초 12개 서비스 모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을 최대 4개까지만 선택이 가능하도록 바꾼 것. 기존 고객들의 기득권은 인정됐지만, 신규 고객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한 장의 카드에 모든 혜택을 담겠다"던 최 사장의 약속은 3개월도 채 지켜지지 못한 셈이다.
KB국민카드 측이 슬그머니 혜택을 축소한 건 체리피커(부가서비스 혜택만 골라 따먹는 고객)들의 집중 공세에 역마진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 '혜담카드 혜택을 최대화하는 방법' 등이 인터넷에 번지면서 발급건수가 출시 3개월도 안 돼 9만장을 넘어섰다.
업계 관계자는 "서비스를 많이 선택하면 할수록 연회비도 높아지는 방식이지만, 연회비의 몇 배 혜택을 볼 수 있는 방법이 고객들끼리 공유됐다"며 "만약 10개의 서비스를 택했다면 연회비를 7만원 가량 내고 연간 70만원 가까이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4개 이상의 서비스를 선택한 고객이 전체의 15%를 넘었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당초 대다수 고객들이 3~4개 정도 서비스만 선택할 것이라던 예상이 빗나갔다"며 "서비스를 많이 선택한 고객 때문에 수익구조가 급격히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금융당국 규정 상 출시 1년 이내에는 서비스 수준을 변경할 수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혜택을 축소해 버린 것. 금융당국이 이 점을 지적하고 나서자, KB국민카드 측은 지난 달 7일 울며 겨자 먹기로 서비스 선택권을 원상 복귀했다.
1일 현재 혜담카드 발급장수는 16만장을 돌파했다. "카드를 발급 받으면 무조건 이익"이라는 입소문이 번지면서 회원 수 증가가 멈추지 않고 있는 것. 덩달아 혜담카드의 적자 폭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수익성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최 사장이 A부장을 '희생양' 삼은 것이라는 관측이다.
회사 안팎에선 최 사장이 본인의 판단 착오에 따른 책임을 실무자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회사 한 관계자는 "혜담카드는 KB국민카드 출범 1주년을 기념해 최 사장이 적극 주문해서 개발된 것"이라며 "이제 와서 그 책임을 모두 실무자에게 떠넘긴다면 앞으로 누가 사장 지시에 따라서 열심히 일을 하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업계에선 KB국민카드가 8월 하순에 혜담카드 서비스 선택권 축소를 고객들에게 공지할 걸로 보고 있다. 서비스 변경 6개월 이전에 공지해야 한다는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라 만 1년이 되는 내년 2월 말 서비스를 축소하기 위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애기다. 업계 관계자는 "최 사장이 비용 절감과 가계부채 축소 등을 내세우며 '원 카드' 전략의 필요성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결국 그게 다 입 발린 소리였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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