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보류된 책임을 놓고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등 외교안보라인 내에서 볼썽사나운 책임 떠넘기기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협정에 서명하기 불과 한 시간 전에서야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서명을 연기한 청와대와 관련 부처의 독선과 오락가락 행태에 국민과 정치권은 분개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후폭풍이 두려워 발을 빼고 있다.
우선 청와대와 외교부의 책임 떠넘기기에 대해 "아무리 정권 임기 말이지만 너무 추한 행태"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근본 책임은 협정 체결안을 처리하도록 지시한 청와대에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1일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며 '윗선 개입설'을 공식 확인했다. 협정 체결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은 협정 서명 한두 시간 전까지도 "예정대로 갈 것이다. 며칠 정도 (언론에) 두드려 맞으면 된다"며 강행 처리 방침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우리는 큰 방향만 잡았고 실무 차원에서 외교부가 처리하기로 했던 사안"이라며 "국회와의 협의나 국무회의 안건 상정도 외교부 소관이기 때문에 청와대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외교부는 서명 직전까지도 협정 체결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강변하다가 서명이 보류되자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며 발을 빼는 등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비공개로 처리하라는 청와대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채 눈치를 살피다가 결국 협정 체결이 보류되자 청와대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외교부의 경우 한일 관계의 주무 부처인데도 문제 의식이 부족했다. 이미 24개국과 정보보호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관성적으로 협정을 체결하려 했다. 외교부 관계자들이 "협정은 정보를 공유하는 틀에 불과하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우려는 기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협정 체결에 따른 파장을 무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1월 한일 국방장관회담 이후 1년여 동안 일본과의 협의를 도맡아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청회 등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상반기 중 협정 체결'이라는 일본과의 합의에 쫓겨 6월 말 협정 체결안을 졸속으로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외교부로 화살을 돌리며 책임론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협정 체결은 외교부가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며 "협정을 통해 우리가 확보하게 될 북한의 핵실험이나 핵물질 관련 정보는 국방부보다 외교부가 더 원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총리실은 야권에서 총리 해임까지 요구하자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외교부와 국방부가 협정 체결이 필요하다고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우리가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며 무력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부처간 조율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또 협정 체결안이 통과된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잡은 사람도 김황식 총리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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