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가 처참히 무너졌다. 5회 연속 올림픽 티켓을 노린 여자농구 대표팀이 1일(한국시간) 터키 앙카라에서 일본에 51-79로 완패했다. 5장의 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린 세계 예선 대회에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온다. 농구인들은 대표팀 감독 선임부터 선수 선발까지 이미 많은 잡음을 일으킨 탓에 '예고된 몰락'이라고 입을 모았다.
▲세계 랭킹 9위는 그냥 숫자일 뿐
한국 여자농구의 국제농구연맹(FIBA) 랭킹은 9위다. 랭킹과 달리 한국의 경기력은 형편 없었다. 조별 예선에서 31위 크로아티아에 졌고, 8강전에서는 8위 프랑스에 63-80으로 크게 패했다. 5~8위 순위 결정전까지 밀려나 15위 일본에도 고개를 숙였다. 정덕화 국민은행 감독은 1일 "랭킹 9위는 현재 대표팀 선배들이 쌓아 놓은 순위"라며 "높은 랭킹만 믿고 방심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난 여자 농구의 대들보 정선민 역시 "선배들의 성적을 후배가 지켜냈어야 했다"라며 아쉬워한 뒤 "세계 농구의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베테랑 선수가 합류해 신구 조화라도 이뤄져야 하는데 이마저도 안 됐다"고 말했다.
▲협회와 연맹의 안일한 대처
이번 대표팀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여자 프로농구 우승 팀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는 관례를 뒤집었다. 대한농구협회는 명확한 이유를 내세우지 않고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을 선임하지 않았다. 대신 이호근 삼성생명 감독을 택했다. 임 감독과 협회 간의 껄끄러운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 선수 차출도 문제였다.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체크하지 않고 12명의 선수를 뽑았다. 훈련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정 감독은 "당연히 임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줄 알았는데 감독 후보군에 내 이름도 올려놓았다.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자농구연맹(WKBL)의 안일한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신세계가 팀을 해체한 상황에서 위기 의식을 갖고 대표팀 운영에 적극 나서야 했다.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앞두고도 연맹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한 농구인은 "연맹과 협회는 올림픽 출전을 남의 일 다루듯 했다"면서 "중구난방식으로 대표팀을 꾸리니 참담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연맹측의 올림픽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팀 전임 감독, 확실한 대표팀 소집 룰 만들어야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 두 번의 실패를 막기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프로 팀 감독은 아무래도 자기 소속 팀 선수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 다른 팀 선수의 기량은 파악할 수 있지만 몸 상태와 멘탈에 관한 부분은 잘 모른다. 정 감독은 "전임 감독이 있으면 객관적으로 모든 선수를 바라볼 수 있다. 또 경쟁 팀 감독보다 소속 팀 선수들의 장∙단점 및 부상, 몸 상태 등을 거리낌없이 알려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선민은 "선수 차출이 가장 중요하다. 소집 기간을 룰로 확실히 정해놔야 한다. 선수들의 정신력으로만 경기할 수 없다. 체력과 컨디션을 끌어올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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