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서 작가 배명훈(34)의 포지션은 독특하다. 웹진과 장르문학 문예지 <판타스틱> 에 SF, 스릴러 등 장르소설을 연재하다가 첫 소설집 <타워> (2009년)로 '문단 바깥의 이단아'로 떠올랐다. 또 2010년엔 출판사 문학동네가 주최한 제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춘문예를 비롯한 기존의 등용문을 거치지 않고도 문단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타워> 판타스틱>
배명훈의 신작 <은닉> (북하우스 발행)은 장르와 순수 두 지형에 한 발씩 담그고 있는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29일 서울 소공동에서 만난 배씨는 이 소설을 "굳이 따지자면 SF스릴러"로 분류하며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SF물인 첫 장편 <신의 궤도> 와 다른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신의 궤도> 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SF물이라면, 신작은 인물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죠." 신의> 신의> 은닉>
연방국가 소속 11년차 킬러인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지시를 받고 체스판 위의 말처럼 임무를 수행한다. 연방은 서열 3위였다가 숙청된 장무권 잔당들의 모반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이런 역학 관계 속에 나는 연방을 배신하고 장무권 일당과 느슨한 동맹관계를 맺는다. 그 고리는 첫사랑인 장무권의 숨겨진 딸 김은경. 나는 특수 정보 분석가인 동료 조은수의 도움을 받아 그를 구하려고 나선다.
작가는 첩보 스릴러를 연상케 하는 이 이야기에 과학적 요소를 접목시킨다. 사람의 취향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가짜 인격 '디코이', 날아오는 총알을 볼 정도로 시력을 높인 특수 콘텍트 렌즈 등이다. 이런 가운데 특수 렌즈와 시신경이 착용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교감하면서 내면의 무의식이 사람을 지배하는 상황이 빚어진다. 작가는 상상력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탐욕, 신(神)과 선악(善惡)에 대한 해석, 첨단 과학의 폐해 등 인문학적 질문들을 던진다.
작가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을 물으니 조은수를 꼽는다. '훈련받은 현장요원 서른 명을 흔적도 없이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보분석가'(93쪽)이다. 작가는 그를 "SF였으면 조직이나 제도가 할 역할을 전부 맡는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배씨는 당초 소설가의 길과는 멀리 있었다. 서울대 외교학과, 동대학원을 나와 연구원으로 일하다 갑자기 2009년 소설가로 진로를 바꾼 것.
"20대 초반에 평생 할 일 2가지를 생각했는데 공부와 글쓰기였어요. 큰 돈 안 벌어도 재미있게 평생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죠. 학자가 되고 난 후 글쓰기는 정년퇴임할 때쯤 하려고 했는데 2008년 전후로 학자 되는 길은 점점 어려워지고, 작가로서 일은 정말 잘 풀렸어요. 지금은 공부가 취미, 글 쓰는 게 직업이 됐죠."
지난해 창작동화집 <끼익끼익의 중대한 임무> 를 내기도 했던 그는 앞으로 "장르소설, 순소설을 포함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끼익끼익의>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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