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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밥벌이의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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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밥벌이의 무서움

입력
2012.07.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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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강원 화천에서 신춘문예 출신의 소설가 임모(47)씨가 빈 집을 돌며 농작물과 세간살이 등을 훔쳐오다 경찰에 붙잡혔다.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해온 그는 경찰에서 "다리를 다친 후 벌이가 없었고 장애인 아내가 다방에서 일하는 게 안쓰러워 못된 짓을 했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1997년 신춘문예 당선후 장ㆍ단편 5편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는 "문학활동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생계유지가 너무 힘들었다"며 뒤늦게 참회했으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문화예술인들의 궁핍한 살림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고 박완서 선생은 자신이 죽으면 찾아올 문인들 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으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을 수 차례 유언처럼 남겼을까?

문인들도 그렇지만 연극 배우들의 생계투쟁은 처절하다. 이문식 박철민 김윤석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등 개성파 스타들을 배출한 대학로는 아직도 춥고 배고프다. 대학 4년을 마치고 극단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손에 쥐는 돈은 아르바이트 시급수준을 조금 넘는다. 연극무대 1회 출연료가 2만~5만원, 이마저 배역을 받지 못하면 벌 수 없으니 편의점, 택배, 영화 단역, 우유배달, 대리운전, 공사장 막일 등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얼굴이 잘 알려진 연예인들은 이직하기도 어려워 사실상 빈곤층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26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탤런트 최윤영(37)도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 아니다. 지병과 가난과 힘겹게 싸우다 세상을 등진 영화감독 최고은(32)씨가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고 남긴 쪽지는 두고두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난달 고단한 삶을 스스로 접은 신인 탤런트 정아율(25)의 한달 수입은 기획사로부터 받는 돈 75만원이 전부였다고 하니 믿겨지지 않는다.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배우 가수 모델 등 연예계 종사자는 2010년 17만 명을 넘어섰다. 전년도보다 무려 40%나 급증한 수치고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의 평균 연소득은 모델이 380만원, 연예보조는 443만원에 불과하다. 월수입이 아닌 연수입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문화예술인의 실태조사(2009년)에 따르면 37.4%가 창작활동 관련 수입이 전혀 없고 22%가 월수입 100만원 이하이다.

2011년 국회에서 통과된 예술인복지법은 이처럼 생계의 위협을 받는 문화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 최고은씨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며 만든 일종의 '최고은 법'이다. 9월 입법예고를 앞두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령을 손보고 있는데 문화예술인의 기준과 범위 등을 어떻게 정할지 궁금하다. 게다가 올해 배정된 예산은 고작 10억원. 그야말로 코끼리에 던져주는 비스킷이 되지 않을까.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가 지겹다고 했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밥벌이의 지겨움> 중)

대다수 문화예술인들에게 밥벌이는 지겨움이라기보다는 살벌하게 다가오는 현실이다. 밥벌이가 힘든 게 어찌 그들뿐이랴. 다만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할 극빈층에 문화예술인들도 의외로 많이 포함돼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안도현 시인은 가난하다는 것을 '오직 한 움큼 덜 가졌고,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둔 것'이라고 노래했지만 그 자리는 절망과 포기, 질시와 고통으로 메워질 수도 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누군가 주린 배를 안고 밥을 훔치거나 생을 포기하려는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지는 않을까. '밥벌이의 무서움'에 소름이 돋는다.

최진환 문화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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