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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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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66)

입력
2012.07.01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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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수는 안 그래도 편지 들고 나간 조수가 가져올 소식이 궁금하여 오후에 다시 들를 생각이었던 것이다. 의원은 놋재떨이를 가판 위에 놓고는 담배를 내어 권한다. 서일수는 자기 것을 가져오지 않아 망설이는데 의원이 담뱃대꽂이에서 한 대를 뽑아 그에게 내밀어주었다. 서로 권하면서 성천초를 담고 성냥으로 불을 댕겨 몇 모금 빨아대니 대번 방안에 구수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리 집에 줄 대놓고 약을 갖다 쓰시는 대감이 몇몇 계시는데, 그 판서 댁은 연로한 어머님이 기력이 떨어져서 늘 걱정이었소. 대보탕도 열심히 해드리고 하였으나, 뭐니 뭐니 하여도 산삼은 죽어가는 사람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명약이라 이 같은 천종삼은 나랏님이나 간간이 쓰시는 것이라오.

하고는 누구 없느냐 외치니 곁꾼이 달려왔고 의원이 일렀다.

자네, 그 창고 방에 이신통이 오라 하고 칼국수 네 그릇 시켜오게.

기다리는 동안 의원이 서일수에게 슬슬 말을 시켰다.

담배 장수인가 했더니 산삼도 팔고, 그러다 한양 와서 대금 쥐고 가겠소.

아니, 나도 누구 부탁을 받고 하는 일이외다. 산삼이 그리 큰돈이 되는 줄도 몰랐고 하여튼 소리 소문없이 처리해주오.

의원을 하려면 환자의 병환에 관하여는 물론이고 사고 파는 약재에 관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합네다. 우리가 약방에 모여 손님들과 흰소리나 지껄이는 것도 안 할 소리를 속에 담아 놓기 위함이니 그리 알아주면 좋겠소.

이신통이 약방에 들어와 합석하고 곧 이어 칼국수가 도착을 하였다. 국수집 하녀가 모판에 대접 넷을 얹어 머리에 이고 와서 전방에 부려 놓았다.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었던 듯, 개다리소반 둘을 놓고 낮것상을 차렸다. 기방의 냉면이나 골동면이 아니라 온면인데 고기 국물에 칼로 썬 메밀국수였다. 낮것을 먹고도 한참이나 지나서 조수가 돌아왔고 의관이 멀끔한 중년 사내가 따라왔다.

어이구 모처럼 걸음 하셨네.

의원이 알은체를 하는데 그는 대감 댁의 집사인 듯하였다. 서일수가 신통에게 눈짓하여 함께 일어서니 의원이 그들을 향하여 외쳤다.

이따가 저녁참에나 다시 들르소. 그리고 이 서방은 낼부터 우리 약방에 와서 책 좀 읽어주시고.

시일이 걸릴 것 같았는데 역시 한양 사대부 댁은 권세와 재력이 겸비되어 있는지 백 년 삼은 천 냥에, 나머지 두 개의 산삼은 각각 오백 냥씩, 도합 이천 냥에 낙착이 되었고, 사흘 만에 어음으로 지불이 되었다. 각서대로 이 할의 소개비 사백 냥을 의원에게 떼어주고 천육백 냥이 서일수의 손에 들어왔다. 아무리 경복궁 공사로 나라 재정이 피폐해지고 당백전이 나돌고 했다지만 천 냥은 아직도 큰돈이었다. 서일수는 이신통에게 허탈하게 말하던 것이었다.

허허, 공연히 세상을 바꾼다고 나댈 것이 아니라, 돈 벌어 자기 팔자나 고치는 게 빠르겠군!

두 사람은 도성 안에 책전이 모여 있는 곳을 두루 다녀 보았다. 의금부와 안국방 주변과 종루의 남쪽 광통교에서 수표교 부근까지 책전과 서화전이 있었다. 의금부와 안국방 주변은 관과 궁의 활자본이나 중국 책이 많았고, 방각본은 광통교 일대와 태평방 일대에 많았으며 그들 책전에 책을 대는 방각소도 있었다. 역시 여러 모로 따져보니 태평방 일대는 혜민서와 구리개 약전 거리가 있고 장악원도 있는 데라 의서에서부터 각종 양생술법서, 건강에 관한 비방서, 무예, 연희, 잡서와 소설책도 많았다. 방각본 소설책의 종류가 많기로는 광통교 부근이었는데 방각소도 여러 집이었지만 책의 내용이 이곳과는 어딘가 동떨어져 보였다. 역시 잡술서가 많이 나오는 태평방 쪽에서 방각소를 찾기로 했고 그들의 거처와도 한 동네나 마찬가지라 여러모로 편리할 듯했다.

이신통이 태평방의 책전을 돌아다니다가 방각소 몇 군데를 찾아내고 그중에 잡술서를 찍어낸 곳을 찾아갔다. 지붕 낮은 초가에 방 한 칸과 널찍한 봉당이 있는 공방이었는데 방각수(坊刻手) 세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이신통이 공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책을 좀 찍어낼까 하여 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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