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인생사용법' 한 건물 100칸의 방, 따로 또 같은 인간 군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인생사용법' 한 건물 100칸의 방, 따로 또 같은 인간 군상

입력
2012.06.29 12:53
0 0

인생사용법/조르주 페렉 지음ㆍ김호영 옮김/문학동네 발행ㆍ744쪽ㆍ3만3,000원

소설, 시, 희곡, 시나리오, 에세이, 미술비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1836~1982)의 대표작 <인생사용법> 이 번역 출간됐다. 가상의 공간인 파리 서북쪽 17구 '시몽크뤼벨리에 거리'에 있는 지상 8층, 지하 2층 건물을 배경으로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1975년 6월 23일 일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독특한 소설이다.

건물은 각 층마다 10칸의 방으로 나눌 수 있는데, 몇 개의 방은 현재(1975년) 비어있다. 총 100칸의 방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엮은 옴니버스식 이야기인 셈이다. 건물의 사람들은 '층계를 따라 반복되는 동일한 공간을 소유하고, 수도를 틀거나 변기의 물을 내리거나 불을 켜거나 식탁을 차리는 동일한 동작을 동시에 행하며, 층에서 층으로, 건물에서 건물로 그리고 거리에서 거리로 반복되는 수십 가지 생활 습관을 동시에 수행한다.'(23쪽) 각자의 방에서 따로따로 살아가면서, 마치 퍼즐처럼 알게 모르게 맞물린 사람 이야기가 99개의 장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건물 수위인 노르셰르 부인, 3층 오른쪽 방에 사는 보몽 부인, 4층 왼쪽 방에 사는 바틀부스, 5층 왼쪽 방에 사는 텔레비전 방송국 프로듀서 레미 로르샤스, 7층 왼쪽 방에 사는 의사 댕트빌, 지금은 비어있는 7층 오른쪽 방에 죽기 전까지 살았던 장인 가스파르 윙클레 등이 희로애락을 엮어내는 주요 인물이다. 나이와 이력, 직업과 취향이 제 각각인 인물들의 면면을 소개하면서 소설의 시간은 1833년부터 1975년까지, 공간은 거의 전 세계로 확장된다.

각 장의 이야기는 대개 각 방의 사물을 관찰하면서 시작한다. 부엌, 방구석, 책꽂이 선반 같은 공간을 건조하게 묘사하다가 어느 한 사물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그 사물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광고용 선전문구, 명함, 팻말, 식당 메뉴판 등을 등장시키며 20세기 중반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들추며 수많은 인간군상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들려준다. 공중그네에서 내려오기를 거부했던 천재 곡예사 이야기, 사기꾼들에 속아 가짜 그리스도 수난 성배를 산 부자 이야기, 퍼즐을 조립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남자 이야기, 아름다운 유부녀와의 사랑의 도피 끝에 농부로 늙은 화학 선생 이야기….

소개할 방의 순서는 각종 수학공식과 체스 등에서 빌린 규칙을 사용해 짰다. 프루스트, 카프카, 레몽 크노, 보르헤스 등 유명작가들의 대표작, 자신의 이전 작품의 문구를 소설 중간 교묘하게 다시 쓰는 문학적 실험도 시도한다. 36장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한 구절이 들어가고, 46장에서는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의 일부분이 나오는 식이다. 페렉의 문학적 편력, 실험성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