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텔레비전 드라마들은 시간여행을 통한 판타지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소재거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백투더 퓨처'(1985)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보듯 시간여행의 모티브는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소재였다. 한국영화로는 '전우치'(2009)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금년처럼 우리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시간여행을 통한 판타지 문화코드를 활용한 건 거의 없었다.
'인현왕후의 남자'(tvN), '옥탑방 왕세자'(SBS), '닥터진'(MBC), '프로포즈 대작전'(TV조선), '빅'(KBS2), '아이러브 이태리'(tvN) 등은 시간코드를 활용해서 판타지를 만들고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이들 드라마들은 현재와 과거, 혹은 과거와 현재의 교차나 어느 날 갑자기 십대에서 이십대나 삼십대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조선 숙종시대 장희빈이 폐비윤씨(인현왕후)를 음해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선비 김붕도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옥탑방 왕세자'도 조선 왕세자 이각이 사랑하는 세자빈을 잃고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심복 3인방과 함께 서울로 날아와 전생에서 못다 한 여인과 사랑을 그렸다. 반면 '닥터진'은 현재 최고의 의사 진혁이 사경을 헤매는 연인으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의사로서 고군분투하는 역사드라마다. '닥터진'이 '인현왕후의 남자'나 '옥탑방 왕세자'와 다른 점은 주인공이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고려시대 무사와 지금 여의사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다룬 '신의'(SBS)도 8월부터 방송될 예정이다.
이들 네 드라마가 배경으로서 역사를 드라마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초월적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면, '빅'이나 '아이러브 이태리'는 영혼의 뒤바뀜을 통해서 판타지 로맨스를 그려낸다. '빅'은 18세 사춘기 소년의 영혼이 한 순간에 삼십대 남자의 몸으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아이러브 이태리'에서도 하루 아침에 14세 소년에서 25세 성인으로 커버린 남자와 매력적인 재벌 상속녀 사이 100일간의 로맨스를 담아낸다. 영혼의 뒤바뀜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프로포즈 대작전'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첫사랑과 잘되기 위해 현실을 바꾸려는 야구선수 강백호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진화과정에서 보면, '인현왕후의 남자', '옥탑방 왕세자', '닥터진', '신의'는 역사드라마 장르의 새로운 징후로 파악할 수 있다. 개연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서 상상적 역사서술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드라마의 장을 이끌었던 '허준'(1999) 이후, 이들 드라마는 상상을 넘어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를 주요 드라마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해를 품은 달'이 성공적으로 보여줬던 판타지 로맨스가 시간과 결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빅', '아이러브 이태리' 등에서 보듯이 영혼이 뒤바뀐다는 것은 '시크릿 가든'이 이미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던 허구적 장치였다. 말하자면 '시크릿 가든'의 진화가 '빅'이나 '아이러브 이태리'라고 할 수 있다.
시간여행을 통한 판타지 코드는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닥터진'은 일본 만화 '타임슬립 닥터JIN'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판타지 문화코드 드라마들은 과거의 위기를 현재에서 해결하거나 현재의 문제를 판타지를 통해서 바꿈으로써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나 현실에서 변화시킬 수 없는 로맨스나 위기를 초월적 상상력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 같은 스타일의 드라마들이 앞으로 얼마나 성공할지 예측하기란 어렵다. 판타지 문화코드 드라마의 부상을 보면서 분명한 것 중의 하나는 시청자들은 각박한 현실로부터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창윤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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