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ㆍ노태복 옮김/부키 발행ㆍ488쪽ㆍ2만원
"창조과학은 사이비과학이다."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인 마시모 피글리우치는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에서 이렇게 말한다. 과학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자연주의, 이론, 실증주의)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은 전지전능한 신이 동식물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초자연성은 검증할 수 없을뿐더러 자연현상을 다루는 자연주의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 이것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강한 미국에서도 창조론은 진화론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패했다. 창조론이 이긴 단 한 번의 재판은 1925년 미국 테네시주에서 있었다.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생물학 교사 존 스코프스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곳에서조차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은 1967년 공식 철회됐다. 그리고 이듬해 연방대법원이 진화론을 가르치는 건 불법이라고 한 아칸소 주의 법률을 폐지했다.
한풀 기세가 꺾인 창조론자들은 꾀를 부렸다. 경쟁 관계에 있는 이론을 알려줘야 학생들이 균형 잡힌 사고를 할 수 있다며 진화론과 창조론 모두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1987년 이 역시 수정헌법 제1조 '정교 분리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자, 이번엔 '창조과학'이란 말을 대신 '지적설계'란 개념을 들고 나왔다.
지적설계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다. 신이 설계하지 않고서야 동식물이 이렇게 복잡한 생체 메커니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도 틀렸다고 말한다. 고대 파충류의 턱뼈가 서서히 변하면서 포유류의 중이(中耳)가 된 것처럼 환원 불가능한 기관조차 기능을 바꾸고, 점진적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엉터리 과학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분명한 의도를 갖고서 기생벌이 쐐기벌레의 살아 있는 몸 속에서 영양분을 얻게끔 의도적으로 창조했다는 사실을 결코 믿을 수 없다."
저자가 분류한 사이비과학 중엔 창조과학과 함께 점성술, UFO 연구도 포함돼 있다. 점성술의 역사는 기원전 4,50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현재 사용하는 12개의 별자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지구 자전축이 흔들리는 춘분점 세차 탓에 황도(지구의 공전궤도) 상에 있는 별자리 위치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점성술을 엉터리라고 꼬집는다.
이 같은 사이비 과학을 조장하는 건 대중지식인의 몰락과 자극적인 보도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언론은 팔리는 정보를 앞세워 선정적인 기사를 쓰고, 지식인을 길러내야 할 대학은 '고객'(학생)을 만족시키는 '상품'으로 전락한 사회에서 제대로 된 과학적 토론이 꽃을 틔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이 한때 연금술에 빠졌고,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설을 세운 알프레드 월리스가 심령술을 옹호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유명 과학자의 말이라도 그냥 믿지 말라고 조언한다. 황우석 사태의 여진이 계속 되는 한국에서도 되새겨 들을 말이다.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의 함정'이란 이 책의 부제가 새삼 와 닿는 것은 최근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시조새에 관한 내용이 학술적으로 잘못됐으므로 삭제해달라"는 청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낸 창조론자의 모임,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에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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