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는 키커가 어느 쪽으로 공을 찰지 고심합니다. 잘 아는 키커라면 방향을 짐작할 수 있지요. 하지만 키커도 골키퍼의 생각을 계산합니다. 그래서 골키퍼는 오늘은 공이 다른 방향으로 올 것이라 짐작하지요. 그러나 키커도 똑같이 생각하면 마음을 바꾸겠죠? 그렇게 계속해서…." 독일작가 페터 한트케의 근작 속 구절이다.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라는 심오한 주제를 다뤘으나 주인공인 은퇴 골키퍼의 심정이 더 생생하다.
■ 모든 스포츠가 사실은 심리전일진대, 그래도 압권은 야구일 것이다. 어떤 곳에 어떤 구질로 공을 던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투수와 포수, 그걸 예측해 칠지 말지를 순간에 결정해야 하는 타자 간의 수싸움은 수학적 통계에 바탕한 고도의 심리싸움이다. 저명한 심리학자 마이크 스태들러는 아예 이란 책까지 펴냈다. 그러나 거친 몸싸움으로 일관하는 듯한 축구에서도 야구 이상의 불꽃 튀는 심리전 순간이 있다. 페널티 킥(승부차기) 상황이다.
■ 축구에서 페널티 키커와 골키퍼의 거리는 11m로, 야구 투수판에서 타석까지의 18.44m보다 훨씬 짧다. 140㎞ 구속의 야구공이 0.4초 걸리는 반면, 통상 시속 120㎞의 축구공은 겨우 0.3초면 골키퍼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타자는 공이 던져지는 순간을 보고 재빨리 결심할 수 있지만, 골키퍼는 그럴 여유조차 없다. 키커의 움직임만으로 예측하고 어느 한 쪽으로 몸을 날려야 한다. 페널티 킥 순간만큼은 어느 경기보다도 심리전 요소가 큰 이유다.
■ 유로 2012에서 단연 화제는 '파넨카킥'이다. 승부차기에서 골문 중앙에다 동네축구 슛하듯 가볍게 톡 차 넣는 방법이다. 어처구니 없이 당한 쪽은 맥이 쫙 빠진다. 실제로 8강전 승부차기에서 여기에 당한 영국의 후속 키커들은 모두 실축해 이탈리아에 승리를 헌납했고, 엊그제 준결승에서도 스페인의 파넨카킥 뒤 포르투갈 키커도 고개를 떨궜다. 가장 평범한 게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역설을 확인해준 고도의 심리전이다. 역시 스포츠는 인생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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