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수전 케인 지음ㆍ김우열 옮김/RHK 발행ㆍ480쪽ㆍ1만4000원
청량제 '프리스크(frisk)'TV 광고의 한 대목.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곳은 어딜까요?'한 남자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 황급히 메모를 한다. '침대 22%'. 빵을 씹으며 걷던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선다. '공원 18%'. 거울 보고 양치질 하던 여자의 눈이 동그래진다. '세면대 7%'. 습관적으로 발로 바닥을 툭툭 치며 일 보던 남자의 동작이 멈춘다. '화장실 32%'. 또 '욕실 29%' '버스안 17%' '무대 위 1%' '공항라운지 4%' '풀장 2%'. 마지막으로 정작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인 회의실은 '0%'.
좋은 아이디어는 주로 혼자 있는 공간에서 떠오른다. '브레인스토밍'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회의실에 우르르 모여 앉아 봐야 나올 아이디어는 빤하다. 떠오르는 생각도 많지 않을뿐더러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면전에서 당장 어떻게 평가 받을지 두렵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 말을 하겠지 하고 옆 사람 얼굴만 쳐다보게 된다.
집단 토의, 팀 플레이, 리더십, 카리스마 같은 말은 현대 산업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그러한 문화를 재생산하며 공고하게 만드는 것은 외향적인 것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의 풍토다. 대중을 잘 이끄는 사람이 출세한다. 팀장이 전부다. 유행처럼 늘고 있는 강연장에서, 학교 교육 속에서,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책을 통해 그런 '롤 모델' 이야기를 캠페인처럼 듣는다.
<콰이어트> 는 그런 사회 풍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 법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협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일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껴 작가로 변신했다고 한다. 현대 사회가 경시하고 있는 내향적인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심리학, 신경생물학 등 다양한 과학 이론과 사례를 열거하며 강조하고 있다. 콰이어트>
미국이 내면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인격의 문화'에서 타인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성격의 문화'로 변한 것은 산업 성장과 관련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족 같은 이웃과 어울려 농사 짓던 시절에서 고향을 떠나 낯선 이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어 '너나 할 것 없이 연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와 같은 화술을 역설하는 데일 카네기나 팀 단위의 조직적인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이후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저자는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첫 PC를 만들 때까지 혼자였고, 간디, 아인슈타인, 고흐처럼 특별한 통찰과 창의성에 번득이는 많은 사람들이 내향적이었다고 말한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훌륭한 지도자들에게는 한결같이 카리스마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내향적인 성격이 문제 해결에 훨씬 효율적인데도 '조용한 사람보다 시끄러운 사람이 더 똑똑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협력은 불필요하고 해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외향적인 성격만 일방으로 강조하지 말고 내향성과 외향성이 공생하는 관계, 리더의 역할과 기타 역할이 사람들의 타고난 장점과 기질에 따라 배분되도록 능동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기 있는 강연회인 TED 콘퍼런스 2012년 개막식에서 이 책 내용을 주제로 강연해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저자는 '사랑은 필수이지만 사교성은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모두와 어울려야 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아이가 조용하다면 아이가 새로운 상황과 사람을 접하도록 도와주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지내게 내버려둬라. 아이가 리더십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불안해하지 말고, 아이의 독창성을 기뻐하고 건전한 양심과 우정의 깊이를 자랑스러워해라. 당신이 교사라면 사교적이고 활발히 참여하는 학생의 존재를 반기면서 수줍음 많거나 자율적이며 외곬으로 파고드는, 장래 예술가 엔지니어 그리고 사상가가 될 아이들을 저버리지 마라. 그리고 기업의 관리자라면 적어도 3분의 1은 더 될 내성적인 직원들의 장점을 살리는 데 좀더 신경을 쓰라고 말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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