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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비님 양심 좀 있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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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비님 양심 좀 있으셔야죠

입력
2012.06.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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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비가 하도 무서워 작심하고 마련한 게 장화였건만, 두 번이나 신었나 신발장 앞에 세워 놓고 수국이나 꽂아놓은 게 하 세월인 듯하다. 내 이른 준비가 동티가 났나, 너무 맑은 하늘과 너무 쨍한 볕 아래 늘어나는 기미나 세는 밤, 장화를 쳐다보다 불쑥 한숨이 터지더니 슬리퍼 찍찍 끌고 산책에 나설 수밖에 없던 순간이 숱하더란 말이다.

아니 그 흔한 비가 대체 왜 안 오는 거냐고. 그래도 우린 도시에 산답시고 수도꼭지 틀면 아직까지 물이라도 콸콸 나오는데 저수지 마르고 저수지바닥 물고기까지 씨가 말라버린 시골은 대체 어떻게들 버틸까. 기아체험과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마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이다, 안도하면서도 뭔지 모를 죄책감이 여전했던 듯 작금의 물 사태도 그랬다.

물도 불도 왜 이렇듯 보다 힘든 이들에게 더한 역경으로 닥치는 걸까. 물차로부터 공급받은 찰랑찰랑 물통을 조심조심 수레에 싣고 가는 할머니를 한 카메라가 좇기에 나도 좇았다. 며칠째 씻지도 못한 나라면 4대강이, 미친 정부의 더 미친 정책이 온 나라를 말라붙게 했네, 멱살잡이라도 할 듯 악을 썼으련만 아 할머니는 물차를 주셔서 고맙다는 말만 계속이셨다.

드디어 비라는 희소식, 만약 아름다운 단비라면 이 착한 어르신들 덕분이라 할 테다. 착한 일 좀 하고 살 테니 제발 주말 지나 젖은 땅 위로 장화 신은 하마처럼 뛰어다니는 한 여자 있기를, 그게 나이기를.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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