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법 "만삭 의사 부인, 목졸림 질식사 증거 부족"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법 "만삭 의사 부인, 목졸림 질식사 증거 부족"

입력
2012.06.28 17:41
0 0

지난해 1월 출산을 한 달여 앞둔 만삭의 박모(당시 29세)씨가 욕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은 전문의 자격 시험을 준비 중이던 남편 백모(32)씨. 검찰과 경찰은 여러 정황과 증거를 내세워 부부싸움 중 남편이 우발적으로 살해를 한 것이라며 백씨를 재판에 넘겼다. 남편은 시종일관 박씨가 욕실에서 넘어지는 과정에서 질식사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사인을 둘러싼 치열한 법정 공방이 펼쳐졌다. 1ㆍ2심은 검찰의 손을 들어줘 남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28일 백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객관적 증거와 이에 기초한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은 위법하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백씨가 박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씨가 목졸림에 의해 사망을 했다면 적어도 박씨가 넘어져서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 부분 역시 검찰이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다시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한다는 것으로 검찰이 명백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1995년 발생했던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도 목격자나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피의자에 대해 무죄를 확정하면서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다.

재판부는 물증주의에 입각해 검찰의 논증에 대한 허점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먼저 박씨의 시신에서 발견된 목 부위의 상처와 내부 출혈에 대해 "외력에 의한 상처와 출혈일 수 있지만, 이 외력이 타인의 손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손에 의한 목눌림 질식사에서만 특유하게 발생하는 소견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사망 후 상대적으로 연약한 조직에 피가 몰려 발생한 시반 출혈이라고 볼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시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출산을 앞둔 피해자가 건강 관리에 유난히 신경을 쏟았고, 평소 특이 질병이 없어 욕조에서 갑자기 실신해 쓰러졌을 가능성도 없다는 검찰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히려 "실제 임신 중인 여성의 5%가 실신을 경험한 연구결과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정되지 않은 사망시각도 꼬집었다. 검찰은 백씨가 집에 있던 오전 3시에서 6시41분 사이에 박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했고, 1ㆍ2심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6시41분 이후 사망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나간 후 욕실에서 출근 준비를 하다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원심에서 살해의 증거로 인정한 사체의 여러 외상에 대해 "욕조 내에서 사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상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동시에 "원심에서 드는 범행 동기 역시 살인의 동기로서는 매우 미약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열쇠는 검찰의 몫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이상 지난 상황에서,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지 미지수여서 미제 사건으로 둔갑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