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장. 1954년 직물회사로 출발해 워낙 좋은 원단만을 고집해왔기 때문에, 제일모직은 정장 쪽에서 특히 강세일 수 밖에 없었다. 신사복 갤럭시와 로가디스가 대표적 브랜드.
하지만 제일모직은 지금 변신 중이다. 오랜 정장을 벗고 파격적인 의상으로 갈아입고 있다. 고급ㆍ고가의 정장 브랜드 외에 젊고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한 제품들을 속속 쏟아내고 있다.
자라 유니클로 H&M 등 해외 SPA(제조ㆍ유통 일괄형의류)의 파상공세에 맞서 토종 SPA브랜드인 에잇세컨즈를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엔 아이돌그룹 빅뱅과 2NE1 스타일의 옷까지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든 대변화의 시작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이자 제일모직 승계자인 이서현 부사장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제일모직은 28일 대형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와 합작계약을 맺고 내년 봄 새로운 패션브랜드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YG엔터테인먼트는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양현석씨가 만든 연예기획사로 현재 이수만씨의 SM과 아이돌 중심의 국내 가수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빅뱅과 2NE1이 대표적 소속그룹이다.
제일모직과 YG는 조인트 벤처를 통해 전 세계 17~23세를 겨냥한 신규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이른바 '영(young) 한류패션'을 론칭한다는 것이다.
이번 제휴는 단순히 연예인이 의류모델을 하는 차원을 벗어나, 제일모직의 의상디자인 과정에서 YG측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남자아이돌은 터프하거나 반대로 미소년스타일, 여자아이돌은 귀여우면서도 섹시미를 강조하는게 보편적인데 YG소속의 빅뱅이나 2NE1을 보면 힙합스타일로 다른 아이돌과는 의상컨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양사의 제휴는 결국 제일모직이 빅뱅이나 2NE1 스타일의 옷을 만드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이돌그룹이 해외로 나갈 때 그들이 입는 의상도 함께 수출된다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와 관련, 제일모직은 브랜드 시작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편집매장을 내는 한편 온라인 판매를 시도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해간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토종SPA 에잇세컨즈 론칭에 이어 YG와 패션사업제휴까지, 과거 제일모직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사업들인데 모두 이서현 부사장의 의중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일모직을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패션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것, 그러나 보수적인 정장 이미지로는 결코 세계화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이 부사장의 판단이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패션부문에서 1조5,214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주고객은 30대 이상이었다. 브랜드별로 매출 1위인 고급캐주얼 빈폴(5,850억원) 2위인 남성정장 갤럭시(2,000억원), 3위인 여성정장 구호(850억원) 등이 모두 그런 케이스다. 이런 편중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10~20대 젊은 층을 겨냥한 합리적 가격대의 옷이 필요한 상황이다.
에잇세컨즈 출시 당시 '삼성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내부 논란도 있었지만, 이 부사장은 그대로 밀고 나갔다는 후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대형연예기획사와 손잡는 건 새로운 도전이자 또 하나의 변화시도"라며 "해외시장에서 한류의류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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