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최근 국세청과의 소송에서 이겨 320억원대의 증여세를 돌려받게 됐다. 차명 재산에 증여세를 부과했던 세법 조항이 없어진 점을 이용, 세금 한푼 내지 않고 거액을 환수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운영하던 건설업체가 부도 나 금융거래가 정지됐던 이 회장은 1983년 ㈜부영과 ㈜대화도시가스의 비상장 주식 수백억원어치를 사들인 뒤 동생 신근씨와 매제 이남형씨 등 명의로 차명 보유했다. 이 회장은 1992년부터 다시 금융거래가 가능해졌으나 한동안 차명 보유한 재산을 되찾지 않았다. 차명 재산의 명의를 되돌릴 때 내야 할 막대한 증여세와 취득세 때문이었다.
2007년 이 회장은 주식 물납(物納) 형태로 830억여원을 증여세로 내고 차명 주식을 자신 명의로 되돌렸다.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긴 했지만,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세무당국이 비상장 주식으로는 증여세 물납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기로 하자, 현금이 부족했던 이 회장은 세제 개편 하루 전날 마지못해 주식 실명 전환을 한 것이다.
그런데 차명 재산 보유를 일종의 탈세 수단으로 규정해 실명 전환시 증여세를 부과했던 국세청 내부 규정이 최근 없어졌다. 이 회장은 곧바로 "2007년 증여받았던 주식은 사실 내 재산이었으므로 증여세 부과는 부당하다"며 국세청 등에 환급을 요구해 증여세를 절반 가까이 돌려받았다. 이 회장은 나머지 절반가량에 대해서도 환급 청구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조일영)는 최근 증여세 320억여원을 추가로 되돌려주라고 판결했다.
한 세법 전문가는 "이 회장은 결국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차명 재산을 돌려받은 셈이라 조세정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08년 조세 포탈과 회삿돈 횡령 혐의로 서울고법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기도 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