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감기가 제일 무서워요. 남편이 감기만 걸리면 숨 쉬는 걸 더 힘들어 하고 심지어 우울증까지 심해지거든요. 그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박순자(61)씨는 만성폐색성폐질환(COPD)을 앓고 있는 남편을 청소일로 병원비를 대며 5년째 간병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괴로워하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할 고통이다.
담배 때문에 생기는 가장 무서운 병으로 보통 폐암을 떠올린다. 그러나 의사들은 폐암보다 더 무서운 병으로 COPD를 꼽는다. 환자도 훨씬 많은 데다 한번 발병하면 아직까지는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산소통 없이 숨 쉬기 힘들어
박씨네 집에는 어디 실험실에나 있을법한 산소통이 있다. 남편이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숨이 차면서 답답해하기 때문이다. 숨이 막힐 듯 증상이 심해지면 산소통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 코로 산소를 넣어줘야 한다. 언제 이런 상황이 닥칠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남편이 감기에 걸리면 호흡곤란 증상은 더 잦고 심해진다. 감기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기관지가 부으면서 좁아지기 때문이다. 응급실에 실려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밤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계속 뒤척이지요. 그러다 너무 힘들면 제 손을 꼭 잡아요. 그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고 불쌍한지…. 손자손녀들이랑 통화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그냥 먹먹해져요."
젊은 시절 남편은 워낙 술과 담배를 즐겼다. 그러다 10여 년 전부터 폐가 점점 안 좋아지더니 결핵을 앓고 급기야 COPD 진단을 받았다. 이미 폐 한쪽을 잘라냈다. 박씨의 남편처럼 폐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으면 COPD는 이미 한참 진행돼 있는 경우가 많다.
COPD는 폐를 비롯한 호흡기에 염증이 생기면서 기능이 점점 떨어져(세포 파괴) 결국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초기엔 거의 증상이 없는 이 병의 발병 원인은 90% 이상이 흡연이다. 을지대학병원 호흡기내과 한민수 교수는 "흡연자의 15~20%에서 COPD가 생긴다"며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보다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고령 흡연자의 경우 절반에서 COPD가 발병한다는 조사도 있다. 게다가 폐암은 일찍 발견하면 수술로 암이 생긴 부위를 잘라낼 수 있다. 조기엔 완치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한 교수는 "하지만 COPD는 한번 걸리면 거의 평생 앓아야 하는 데다 점점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악화만은 막아야
COPD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증상이 심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COPD가 심해진다는 의미는 단순히 기침이 더 잦아지거나 가래가 더 많아지거나 숨이 좀 더 찬 정도가 아니다. 환자는 몸에 산소가 크게 부족해지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극심한 호흡곤란 상태가 되면서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전문의들은 이 같은 상태를 '악화(Exacerbation)'라고 표현한다. COPD가 진행될수록 악화가 나타나는 빈도는 더 잦아진다. 악화 때문에 입원한 뒤 12개월 안에 사망하는 비율이 심장마비 입원 후 12개월 내 사망률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김강길(67)씨는 지난해부터 악화를 자주 경험하고 있다. 시간장소에 관계 없이 갑자기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가고, 비몽사몽 정신을 잃기 일쑤다. 이젠 아예 집 거실뿐 아니라 침실, 화장실, 계단 곳곳에 산소튜브를 연결해놓았다. 김씨는 "(악화가 올 때마다)이제 죽어야겠다 하는 충동이 생긴다"고 말했다. 취미가 등산과 축구일 정도로 운동을 즐겨 했지만, 40년 동안 하루 평균 한 갑씩 피운 담배가 김씨의 폐 기능을 남들의 절반 미만으로 뚝 떨어뜨려 놓았다.
안타깝게도 당장 담배를 끊고 처방 받은 약을 제대로 쓰는 것 말고는 악화를 막을 만한 별다른 방법이 없다. COPD 환자에게 주로 처방되는 약은 기관지확장제와 스테로이드제. 기관지확장제는 말 그대로 숨을 편히 쉴 수 있도록 기관지를 열어주고, 스테로이드제는 염증을 억제해준다. 기관지확장제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고, 스테로이드제는 오래 쓰면 혈당 조절이 안 되거나 얼굴이 붓고 피부가 갈라지며, 폐렴, 감기 같은 감염병에 잘 걸리는 문제가 생긴다.
의료계는 올 하반기 출시될 새로운 COPD 치료제 로플루밀라스트(제품명 닥사스)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임상연구 결과 이 성분이 COPD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세포의 활동을 돕는 특정 효소(PDE4)를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는 "기존 기관지확장제나 스테로이드제와 비슷한 역할을 일부 하면서 동시에 악화 빈도를 줄이고, 악화 때문에 발생하는 사망률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COPD와 폐암, 버거씨병… 금연만이 최상의 예방책
만성폐색성폐질환(COPD)과 폐암은 발병 과정이 전혀 다르다. COPD는 유해물질이 호흡을 통해 폐를 비롯한 호흡기계에 들어가 염증을 일으켜 기능을 점점 떨어뜨리는 병이다. 폐암은 염증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마구 증식하는 세포 때문에 생긴다. 이런 암세포가 정상조직을 점점 파괴하면서 점점 퍼져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두 병 모두 담배가 가장 확실한 발병 원인이라는 점은 같다. 보건당국은 전체 암의 약 30%가, 특히 폐암은 약 90%가 흡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COPD 환자의 약 90%도 담배가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둘 다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흡연자이거나 과거 담배를 피웠다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전문의들은 45세 이상이면서 하루에 한 갑 이상 20년 넘게 담배를 피운 사람은 6~12개월에 한번씩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통해 폐 영상을 찍어보길 권한다. 또 40세 이상이면서 흡연하는 사람은 6개월에 한번 호흡 능력을 확인하는 폐활량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버거씨병(폐색성혈전혈관염)도 담배가 원인이다. 혈관 곳곳이 막히면서 팔다리 말단 조직이 파괴돼 괴사 상태에 빠진다. 현재까지 버거씨병에 대해 유일하게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은 금연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 한국 성인 남성의 현재흡연율(평생 담배를 5갑 이상 피웠고, 지금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비율)은 48.1%, 성인 여성은 6.1%다. 하루 평균 흡연량은 남자 16.2개비, 여자 9.1개비였다. 성인 남자는 1년에 약 296갑의 담배를 피우고, 담뱃값으로 약 74만원을 지출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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